압구정 ‘갑질 지옥’ 11년…산재 인정에도 위자료 한 푼 못 받았다
압구정 ‘갑질 지옥’ 11년…산재 인정에도 위자료 한 푼 못 받았다
산재보험, '정신적 고통' 위자료는 미포함
민사소송 별도 청구해야

2014년 11월 9일,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 시민사회 단체 회원 등이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앞에서 집회를 연 모습. 이들은 "입주민대표자회의는 분신한 경비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라"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강남 땅에는 악마가 산다."
2014년, 서울 압구정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모욕과 폭언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원 故 이만수 씨의 장례식에서 한 친구가 남긴 추모사다.
근무 시작 단 한 달 만에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고, 석 달 만에 비극적 선택을 해야 했던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11년이 흐른 지금, 그의 죽음이 남긴 법적 과제는 해결됐을까.
31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에 출연한 로엘 법무법인 이동연 변호사의 분석을 통해 '압구정 아파트 경비원 분신 사건'의 법적 쟁점과 그 후의 변화를 짚어봤다.
"이거나 먹어"⋯인격 짓밟은 3개월, 회사는 사직을 권했다
2014년 7월, 53세였던 이 씨는 압구정 신현대 아파트에 경비원으로 배치됐다. 하지만 그곳은 다른 경비원들이 모두 기피하던 곳이었다. 한 입주민의 상습적인 괴롭힘 때문이었다.
이동연 변호사는 "해당 입주민은 경비원을 머슴처럼 대했다"며 "분리수거를 제대로 못 한다며 질타하고, 5층에서 상한 음식을 화단으로 던지면서 '이거나 먹어'라고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 괴롭힘이 세 달간 이어지자 이 씨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고, 결국 2014년 10월 7일 아침, 30분간의 욕설을 들은 뒤 분신을 시도했다.
이 씨는 용역업체 소속 파견 노동자였다. 그는 고통 속에서 회사 경비팀장에게 여러 차례 근무지 변경을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병가는 무급이고 힘들면 일단 권고 사직해라. 연말에 자리가 생기면 받아주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명백한 사용자의 근로계약상 보호 의무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법원은 관리회사가 입주민으로부터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했다고 명확히 판시했다"며 "근무 부서를 변경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오히려 사직을 권유한 것은 명백한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산재 인정됐지만, 위자료는 0원이었던 이유
이 씨의 죽음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당시만 해도 근로자의 극단적 선택을 산재로 인정한 사례가 거의 없어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유족들은 산재 보상금과는 별개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동연 변호사는 "산재가 인정되더라도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 즉 위자료는 산재 보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산재보험은 치료비, 유족급여 등은 지급하지만,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는 별도로 가해자나 사용자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통해 청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유족들은 가해 입주민과 관리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가해 입주민은 "잘못이 없다"며 버텼고, "내 명의 재산이 없어 배상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법원은 강제조정 결정을 통해 입주민에게 2,5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관리회사 역시 "예측할 수 없는 사고였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보호 의무 위반 책임을 인정해 유족에게 2,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변호사는 "위자료 액수가 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살 사고에 대해 사용자의 책임을 거의 인정하지 않던 과거 판례에 비춰볼 때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11년 지났지만⋯반복되는 비극, 법적 맹점 여전
사건 이후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이 개정돼 경비원의 업무 범위가 구체화됐고, 2023년부터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경비원에게도 적용됐다. 하지만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동연 변호사는 "사용자가 법을 위반했을 때 과태료나 형사 처벌 같은 실질적인 제재 수단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경비원들은 보통 3개월 단위로 계약하기 때문에 고용이 불안한 상황에서는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안타깝게도 경비원을 향한 갑질 사건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피해를 겪고 있다면 증거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변호사는 "CCTV, 녹음 파일 등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고, 폭행이 있었다면 반드시 병원 치료 기록과 사진을 남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문자나 통화 녹음을 통해 관리업체나 경찰에 공식적으로 피해 사실을 신고한 내역을 남기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