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아버지 돌보다 폭발”…판사도 울린 아들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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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아버지 돌보다 폭발”…판사도 울린 아들의 비극

2025. 10. 23 09:11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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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이은혜 부장판사)는 지난 22일, 조현병을 앓던 아버지를 장기간 학대하고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존속학대치사 등)로 기소된 A씨(31)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하고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범행의 패륜성과 결과의 중대성은 엄중히 지적하면서도, 피고인이 홀로 짊어져야 했던 극심한 스트레스와 가혹한 가정환경 등 기구한 삶을 폭넓게 참작하며 형법 제51조의 양형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벼랑 끝에 몰린 아들, 8개월간의 비극

피고인 A씨의 비극은 2022년 1월부터 시작된다. 그는 강원도 양양에서 조현병을 앓는 아버지 B씨(71)와 단둘이 거주하며 일용직과 택배기사로 생계를 유지했다.


고된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더해, 아버지의 조현병 증세가 악화되면서 문제는 극에 달했다.


B씨는 대소변을 본 뒤 변기 물을 내리지 않거나, 대변이 남아있는 물로 용변 뒤처리를 하는 등 위생 관리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딱히 도움을 청하거나 기댈 곳이 없었던 A씨는 이중고 속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결국, A씨는 2023년 5월부터 그해 12월까지 아버지가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폭언을 하고 회초리나 주먹으로 폭행하는 등 학대를 시작했다.


마침내 2024년 1월, 아버지가 또다시 변기 물을 내리지 않은 모습을 보고 격분해 나무 막대기로 온몸을 무차별 폭행했고, 결국 아버지는 척추뼈와 갈비뼈가 골절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목숨을 잃었다.


법원이 인정한 '양가적 감정'과 '가혹한 삶'

재판부는 이 사건의 비극적 배경에 주목했다.


항소심을 맡은 이은혜 부장판사는 선고 전 피고인에게 "부모니까 떨쳐낼 수 없고, 미워할 수 없으면서도 남보다도 못한 부모에게 억울한 마음도 들었을 것"이라며 피고인의 복잡한 심경에 깊이 공감했다.


재판부는 특히 피고인의 가혹한 가정환경과 불우한 성장 과정이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한 주요 원인 중 하나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왜 이 사건에 이르게 됐을까를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아무것도 받은 게 없는데 나이 들어 짐만 된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아버지에게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는 형법의 대원칙인 책임주의에 입각하여, 피고인의 비난가능성을 판단할 때 단순한 범행의 객관적 결과뿐만 아니라 행위자가 처한 주관적 사정, 즉 심리적 압박 상황과 사회적 지원체계의 부재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다.


1심 법원 역시 "조현병을 앓는 아버지를 장기간 홀로 모시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이고, 딱히 도움을 청하거나 기댈 곳이 없었던 피고인에게 모든 책임을 묻기에는 다소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판시하며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존속범죄 패륜성 vs. 책임 경감: 법리적 균형점은?

재판부는 존속학대치사라는 패륜적 범행과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에 대해 엄중히 지적하면서도, 피고인의 심리적 압박을 참작하여 1심의 징역 6년형을 유지했다.


이는 법리적으로 '불법'과 '책임'을 구별하여 조화롭게 평가한 결과다.


  • 불법의 측면 (패륜성, 결과의 중대성): 존속범죄의 가중처벌 근거가 되는 패륜성과 생명 침해의 중대성은 행위의 객관적 측면에서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이 점을 분명히 불리한 정상으로 인정했다.


  • 책임의 측면 (심리적 압박, 가정환경): 반면, 극심한 돌봄 스트레스, 가혹한 가정환경, 사회적 지원체계의 부재 등은 피고인이 범행에 이르기까지 겪은 주관적 사정으로, 그의 실질적 비난가능성을 완화하는 책임 경감 사유가 된다.


법원이 최종적으로 선고한 징역 6년은 존속학대치사죄의 양형기준인 '특별가중영역(징역 3년~7년 6개월)' 범위 내에 있으며, 책임과 형벌의 비례 원칙에 따라 범행의 중대성과 피고인의 기구한 삶을 균형 있게 고려한 것으로 평가된다.


검찰은 1심에서 징역 25년을 구형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례적인 참작 사유들을 인정하며 원심 판결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했다.


판사의 마지막 충고: "아버지를 한 남자로서 되돌아보길"

재판부는 피고인의 형사적 책임 이외에 인간적인 성찰을 촉구하며 마지막 조언을 건넸다.


"이 좋은 세상을 제대로 즐기고 누려보지도 못한 채 아팠던 부친의 인생도 굉장히 불행한 것"이라며, "보호자로서가 아니라 한 남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되돌아본다면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조언은 단순히 처벌에 그치지 않고 피고인이 자신의 행위를 성찰하고 피해자인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서 이해하도록 돕는 회복적 사법의 관점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A씨는 "정말 아버지에게 큰 피해를 주려고 마음먹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울먹이며 깊은 반성의 태도를 보였다.


A씨의 사건은 정신질환자 가족의 돌봄 부담이 개인에게만 전가되는 현실과, 이에 대한 사회적 지원체계의 부재가 낳은 비극적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법원의 판결은 엄정한 법집행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돌봄 가족이 벼랑 끝에 몰렸을 때 국가와 사회가 져야 할 책임을 함께 묻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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