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남편 사업에 집까지 팔았는데 내 연금도 줘야 하나요?”
“30년간 남편 사업에 집까지 팔았는데 내 연금도 줘야 하나요?”
법조계 “기여도 0% 넘어 ‘마이너스’ 입증하면 분할 최소화 가능
재산 탕진은 결정적 증거”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아버지는 30년 결혼 생활 내내 어머니에게 돈만 요구했습니다. 이제라도 어머니를 아버지로부터 해방시켜드리고 싶습니다.”
30년간 공무원으로 일하며 가정을 책임진 아내. 평생 사업 실패만 거듭하며 아내의 재산을 축낸 남편. 황혼 이혼을 결심한 아내 앞에 ‘공무원 연금도 나눠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이 닥쳤다.
어머니 A씨의 삶은 남편 B씨의 ‘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저당 잡혀 있었다. 30년의 결혼 생활 동안 B씨가 사업으로 돈을 벌어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사업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공무원인 A씨에게 손을 벌렸고, A씨는 최근까지도 남편에게 돈을 부쳐야 했다. 심지어 B씨는 지인에게 돈을 빌리며 A씨를 보증인으로 내세웠고, 그 빚은 고스란히 A씨의 몫이 됐다.
결국 부부의 유일한 보금자리였던 집마저 남편의 사업 실패로 처분해야 했다. 현재 A씨와 자녀들은 외가에 기대어 살고 있다.
평생을 헌신한 결과가 ‘무주택’과 ‘빚’뿐이라는 사실에 자녀들은 어머니의 이혼을 돕기로 결심했다.
내 피 같은 연금, 법은 무조건 나누라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A씨가 퇴직 후 받고 있는 공무원 연금이었다. 현행 공무원연금법에 따르면, 혼인 기간이 5년 이상일 경우 이혼한 배우자는 상대방의 연금을 나눠 받을 권리(분할연금 청구권)를 갖는다. 30년간 혼인 관계를 유지했기에, 원칙적으로 B씨는 A씨 연금의 절반가량을 요구할 법적 권리가 있는 셈이다.
여러 변호사들은 “공무원 연금은 부부가 혼인 중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으로 보는 것이 대법원 판례”라며 “법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법 조문만 보면, A씨는 평생 가족을 등한시한 남편에게 자신의 노후 자금까지 떼어줘야 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기여도 0% 넘어 ‘마이너스’라면? 판도를 뒤집을 열쇠
하지만 법조계는 ‘기여도’라는 변수가 판을 뒤집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재산분할 제도의 핵심은 단순히 재산을 절반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재산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각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따지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한 변호사는 “재산분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기여도”라며 “남편이 가정에 금전적 기여를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아내에게 지속적으로 금전적 부담을 지우고 집까지 처분하게 만든 경우, 법원은 남편의 기여도를 매우 낮게, 심지어 ‘마이너스’로 평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재산을 늘리는 데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축내기만 했다면 분할해 줄 재산이 없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남편의 사업 실패 내역, 아내로부터 받아 간 금전 지원 내역(계좌 이체 기록), 아내가 대신 갚아야 했던 보증 채무 서류 등을 통해 남편의 ‘마이너스 기여’를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관건이다.
최악의 남편에게 한 푼도 안 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A씨는 B씨에게 연금을 한 푼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변호사들은 “현실적으로 10대 0의 결과를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분할 비율을 최소화하거나 사실상 분할을 배제하는 판결을 이끌어낼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법원은 한쪽 배우자가 재산 형성에 전혀 기여하지 않거나 재산 소모에 주된 책임이 있는 경우, 기여도를 30% 이하로 인정하거나 그보다 훨씬 낮게 책정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이성준 변호사는 “대전고등법원의 한 판결에서는 공무원 퇴직연금에 대한 상대 배우자의 분할 비율을 20%로 낮게 정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아버지의 유책성과 재산 감소 행위가 명백히 입증된다면, 법원이 분할 청구 자체를 기각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정우승 변호사는 “이혼 조정 절차에서 양측이 합의해 ‘연금분할청구권을 포기한다’는 조항을 넣으면 연금 분할을 막을 수 있다”며 소송 전 합의의 가능성도 제시했다. 결국 30년간의 고통을 법정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게 펼쳐내느냐에 A씨의 노후가 달린 셈이다.
법의 문은 원칙을 말하지만, 법정의 저울은 30년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는다. 철저한 증거와 논리적인 변론이 A씨의 노후를 지킬 가장 강력한 무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