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지킬 도구 찾으려 남의 택배 뜯은 교사, 절박한 선택도 '절도죄' 될까?
몸 지킬 도구 찾으려 남의 택배 뜯은 교사, 절박한 선택도 '절도죄' 될까?
변호사들 "무혐의 다퉈야 교단 지킨다" 경고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그날 밤, 어둠이 짙게 깔린 귀갓길에서 공포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갑작스러운 폭행을 당한 공립 초등교사 A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그녀가 피신한 곳은 옆 건물 오피스텔의 낯선 복도였다.
추가 공격의 공포 속에서 A씨는 입주민들에게 도움을 청하려 여러 집의 초인종을 눌렀지만, 복도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절박함이 극에 달한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복도에 쌓인 택배 상자들이었다.
자신을 보호할 도구라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상자 여러 개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물건을 훔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대부분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하지만 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곧 그녀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되었다.
절도인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인가
A씨의 행위는 과연 절도일까. 변호사들은 절도죄의 심장부는 '남의 물건을 훔쳐 내 것으로 삼겠다'는 명확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이를 법률 용어로 '불법영득의사'라고 부른다.
법률사무소 장우의 이재성 변호사는 "A씨는 폭행 피해 직후 극심한 공포 속에서 자신을 보호할 도구를 찾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 택배 물품을 가질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절도죄의 핵심 요건인 불법영득의사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폭행이라는 현재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긴급피난'에 해당해,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기소유예, 교사 발목 잡는 족쇄 되나
문제는 경찰이 언급한 '기소유예' 처분이다. 기소유예는 검사가 혐의는 인정되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결정이다. 전과 기록이 남지 않아 일반인에게는 사실상 선처로 여겨진다.
하지만 공무원인 A씨에게 기소유예는 '독이 든 성배'와 같다. 법률사무소 율섬의 남기용 변호사는 "기소유예는 유죄를 전제로 하는 처분이므로, 수사기관은 이 사실을 소속 교육청에 통보하게 된다"며 "이를 근거로 '품위유지 의무 위반' 등 내부 징계 절차가 개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법률사무소 더든든의 추은혜 변호사 역시 "교원 신분을 지키려면 기소유예가 아니라 무죄, 즉 '혐의없음' 처분을 받아내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무혐의' 외엔 답 없다…그러나
결국 변호사들의 조언은 하나로 모인다. A씨가 기소유예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절도 의사가 전혀 없었음을 적극적으로 소명해 '혐의없음'을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성지의 최정욱 변호사는 "범죄가 되지 않는 행위를 두고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유죄를 전제로 기소유예 처분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무혐의 주장을 거듭 촉구했다.
다만 A씨가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법무법인 중산의 김영오 변호사는 "봉인된 타인의 택배를 허락 없이 개봉한 행위는 절도죄가 아니더라도 '비밀침해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