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정리 전 명의이전, '선행'이 '최악의 수' 되는 순간
빚 정리 전 명의이전, '선행'이 '최악의 수' 되는 순간
신속채무조정 앞두고 '명의신탁' 재산 이전? 사해행위로 집 잃고 빚더미 앉을 수도

신속채무조정을 앞두고 재산을 이전하면 채권자 권리를 해치는 '사해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 AI 생성 이미지
빚을 탕감받는 신속채무조정을 앞두고, 부모님 돈으로 산 아파트 명의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려던 한 채무자의 계획에 법률 전문가들이 강력한 경고등을 켰다.
채무초과 상태에서 이뤄지는 재산 이전은 채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해행위'로 간주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로 인해 어렵게 받은 채무조정 자체가 무효가 되고 부동산 강제집행까지 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빚과 무관한 부모님 집'…채무조정 전 명의 원상복구 계획
신속채무조정을 통해 재기를 꿈꾸는 A씨. 그에게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아파트 한 채가 있다. 하지만 이 아파트는 A씨의 자금 투입 없이 100% 부모님 돈으로 마련한 것으로, 명의만 빌려준 상태다.
채무조정을 신청하기 전, 그는 빚과 상관없는 이 아파트의 명의를 당연히 부모님께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채무조정 대상인 대출들은 아파트를 취득하기 전에 발생했기 때문에, 채권자들이 아파트를 담보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다. 과연 A씨의 계획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안전할까?
법원 "등기부상 명의가 곧 재산"…사해행위 간주 가능성 '매우 높음'
법률 전문가들은 A씨의 생각이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A씨가 스스로 빚이 재산보다 많은 '채무초과' 상태임을 인정하고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마당에, 유일한 부동산을 타인에게 이전하는 행위는 채권자들의 몫을 빼돌리는 '사해행위(詐害行爲)'로 판단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홍현필 변호사는 "비록 부모님 돈으로 구입한 아파트이고 명의만 빌려준 것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소유권이 귀하에게 있었기 때문에, 이를 부모님께 다시 돌려주는 행위가 채권자(대출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채무자가 가진 재산을 감소시킨 행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라고 명확히 지적했다.
장휘일 변호사 역시 "등기부등본상의 명의가 중요하므로, 채권자 입장에서는 A씨의 재산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명의 이전 시점에 A씨가 채무초과 상태였다면 사해행위로 간주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명의만 빌려줬다' 항변, 법정 소송으로도 뒤집기 힘들어
A씨처럼 '실제 소유주는 부모님'이라는 주장은 법적으로 '명의신탁'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주장만으로 사해행위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현행 '부동산실명법'상 명의신탁 약정 자체가 무효이며, 등기부상 소유자인 A씨가 법적 소유자로 강하게 추정되기 때문이다.
김태환 변호사는 유일한 해결책에 대해 "사해행위를 피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A씨 상대로 명의신탁계약 해지를 목적으로 사해행위취소 소송 등을 제기하는 등, 명의신탁 관계를 객관적으로 입증 받을 수 있는 소송을 하셔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간단치 않다. 정정주 변호사는 A씨의 사례에 대해 "계약명의신탁으로 보여지고 매도인은 명의신탁에 대해 몰랐을 것으로 보여져서, A씨 명의 소유권이전등기는 유효한 것이되고, 명의신탁 해지도 안되고, 부모님에게 매매대금 상당의 부당이득의무만 남게 됩니다"라고 분석했다.
소송을 하더라도 명의를 되찾기 어려울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다.
최악의 시나리오: 채무조정 무효, 아파트는 경매로
만약 A씨가 계획대로 명의를 이전한다면 어떤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까? 채권자들은 등기부등본 열람 등을 통해 재산 변동 내역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후 사해행위라고 판단되면 법원에 '사해행위 취소 소송'을 제기해 아파트 명의를 다시 A씨에게로 원상복구시킨 뒤 강제집행에 나설 수 있다.
정정주 변호사는 "만약 부모님 명의로 소유권이 이전되는 경우 대출회사에서는 즉시 상환을 요구하고, 임의경매 신청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라고 경고했다.
더 큰 문제는 A씨가 애써 신청한 신속채무조정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법원 판례는 "채무조정 당시 신고하지 않은 재산이 발견될 경우와 제3자에게 재산권을 양도한 행위(사해행위)가 발견될 경우에는 채무조정이 무효화되어 면제금액 전액이 부활되며, 해당 재산에 강제집행을 하여도 이의가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섣부른 명의 이전이 빚 탕감의 기회는 물론, 부모님의 피땀 어린 재산까지 잃게 만드는 부메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