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불 꺼줬더니 "소화기 물어내라" 황당 요구…진짜 물어줘야 하는 걸까?
가게 불 꺼줬더니 "소화기 물어내라" 황당 요구…진짜 물어줘야 하는 걸까?
초기 진압 나선 행인에게 닥친 적반하장 청구서
명백한 긴급피난, 변상 의무 전혀 없어

불이 나자 소화기로 직접 불을 꺼 화재를 막은 행인. 그런데 식당 주인은 “소화기 값 내라”고 청구했다. 선의로 도운 사람이 오히려 돈을 내야 한다니, 이게 맞을까? /셔터스톡
한 상가 건물 앞에서 불이 났다. 전봇대 주변 쓰레기 더미에 누군가 담배꽁초를 던져 넣은 탓이었다. 바람이 불어 불길이 건물로 옮겨붙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 소방차가 현장에 닿기도 전에, 지나가던 행인이 근처 식당 1층에 비치된 소화기를 들고 초기 진압에 나섰고 불은 무사히 잡혔다.
그런데 얼마 후, 이 행인에게 황당한 영수증이 날아왔다. 식당 사장이 "불 끄느라 쓴 소화기를 물어내라"고 요구한 것이다. 선의를 베풀었던 행인은 "다시는 남을 돕지 말아야겠다"는 씁쓸함만 남았다. 이 사연은 현직 소방관 백경 작가가 에세이집 '당신이 더 귀하다'에 소개한 실제 에피소드다.
정말 불을 꺼준 대가로 소화기 값을 변상해야 하는 걸까.
행위는 '긴급피난', 변상 의무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행인은 소화기를 물어줄 법적 의무가 전혀 없다. 이는 '긴급피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우리 민법(제761조 2항)과 형법(제22조 1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배상 책임을 묻지 않거나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즉,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면 위법하지 않다는 의미다.
이번 사례는 긴급피난의 요건을 명확히 갖췄다.
- 현재의 위난: 화재가 건물로 번질 수 있는 급박한 위험이 존재했다.
- 부득이한 행위: 소방차가 오기 전, 불길을 막을 수단으로 소화기를 사용한 것은 부득이한 조치였다.
- 상당성: 행인이 사용한 소화기 한 개의 재산적 피해보다, 화재로부터 지켜낸 식당과 건물의 재산, 사람들의 생명이 비교할 수 없이 크다.
따라서 행인의 행동은 법적으로 정당하며,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히려 행인이 '소화기 값' 청구 가능
더 나아가, 법적 관계는 오히려 정반대다. 행인은 식당 사장에게 '사무관리'를 해준 입장이다. 사무관리는 법적인 계약이나 의무가 없음에도 타인(식당 사장)을 위해 자발적으로 사무(화재 진압)를 처리해주는 것을 말한다(민법 제734조).
이 경우, 관리자(행인)는 그 일을 처리하며 쓴 '필요비', 즉 소화기 재구입 비용을 본인(식당 사장)에게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민법 제739조 1항).
결국 법리적으로는 행인이 소화기 값을 물어주는 것이 아니라, 화재 진압으로 자신의 식당과 건물을 지켜낸 이익을 얻은 식당 사장이 행인에게 소화기 값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행인이 소송까지 해가며 소화기 값을 청구하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법리적으로는 명백하다. 선의로 위험을 막은 행인에게 변상을 요구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