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적으로 접근해 혼인신고 한 뒤 전 재산 빼돌린 상대방, 결혼 무효로 돌릴 수 있나
계획적으로 접근해 혼인신고 한 뒤 전 재산 빼돌린 상대방, 결혼 무효로 돌릴 수 있나
혼인신고 후 전 재산 빼돌린 상대방
횡령죄로 고소했지만, 친족상도례로 불기소처분
혼인 파탄 사유지만, 혼인무효를 인정받기는 쉽지 않아

혼인신고 후 재산을 모두 빼돌린 상대방. 애초부터 정상적으로 결혼 생활을 할 생각조차 없던 게 확실하다. 이에 A씨는 결혼 사실을 없던 일로 되돌리고 싶다. 이런 경우 혼인무효소송을 할 수 있을까? /셔터스톡
돌이켜보니 모든 게 '다 계획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만난 지 한 달도 안 돼 결혼을 하자고 했던 그때는 몰랐다. 그만큼 소위 '콩깍지'가 씌어 있었다. 하지만, 빈털터리가 된 A씨는 이제야 깨달았다.
야금야금 통장에 있던 돈을 빼갔던 걸 몰랐던 건 아니다. 결혼 준비로 썼다고 하니 넘어갔을 뿐. 그런데 자신의 어머니까지 속여 재산을 빼돌렸다니. 어쩐지 식도 안 올렸는데, 혼인신고를 서두르는 게 찜찜하긴 했다.
결국, A씨는 자신을 속이고 돈을 빼돌린 B씨를 횡령죄로 고소했다. 하지만 '친족상도례' 때문에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 이것까지 계산해 혼인신고를 서둘렀던 것 같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정상적으로 결혼 생활을 할 생각조차 없던 게 확실하다. 그러니 B씨와의 결혼 사실을 없던 일로 되돌리고 싶다. 이런 경우 혼인무효소송을 할 수 있을까?
혼인무효소송은 '혼인' 사실 자체를 무효화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이혼이나 혼인 취소에 비해 그 기준을 훨씬 까다롭게 적용하고 있는데, 민법 제815조 혼인무효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혼인의 무효사유는 다음 4가지가 있다.
①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을 때
② 혼인이 제809조 제1항의 규정을 위반할 때 (근친 간의 혼인)
③ 당사자 간에 직계인척관계가 있거나 있었던 때
④ 당사자 간에 양부모계의 직계혈족관계가 있었을 때
따라서 A씨가 혼인무효소송을 내기 위해서는 '혼인에 대한 당사자 간 합의가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만약 상대방이 A씨의 재산 횡령을 목적으로 결혼을 한 것이라면, '혼인에 대한 당사자 간 합의가 없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에스알의 고순례 변호사는 "(A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애초부터 상대방에게 혼인의 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해 혼인무효소송을 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입증이 관건이라고 했다. 법무법인 세안의 정진규 변호사는 "혼인무효소송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이를 설득할 만한 입증자료가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정현 법률사무소의 송인욱 변호사는 서울가정법원의 판례를 들었다. 2006년 당시 서울가정법원 재판부는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경우 혼인신고는 무효가 되지만, 당사자 간에 혼인 관계의 성립·유지뿐만 아니라 혼인 관계라는 외관을 이용하려는 다른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혼인신고가 무효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서울가정법원, 2005드단49846)
'노경희 법률사무소'의 노경희 변호사도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노 변호사는 "A씨가 법원에 혼인무효 또는 취소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혼인 경위를 비롯한 구체적인 사실관계 및 증거자료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승 종합법률사무소의 김장천 변호사는 "혼인무효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혼인취소 혹은 이혼 소송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혼인취소란 민법 제 816조에 따른 것으로, 혼인 당시 당사자 한쪽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사유가 있음을 알지 못 했을 때,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해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 혼인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