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알아서 해준다는데… 112 신고 후 고소장, 꼭 내야 할까?
경찰이 알아서 해준다는데… 112 신고 후 고소장, 꼭 내야 할까?
내 권리 지키는 고소장 사용법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폭행 피해로 112에 신고한 A씨. 경찰이 출동해 사건은 접수됐고 담당 형사까지 배정됐지만, 그의 고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단순 폭행을 넘어 상해 진단까지 받았고, 가해자의 모욕적인 언사로 인한 정신적 고통도 극심했기 때문이다.
증거자료를 들고 경찰서를 다시 찾은 A씨는 상해와 모욕 혐의를 추가한 정식 고소장을 내려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담당 형사의 말은 뜻밖이었다. “자료만 주세요. 제가 알아서 죄명 변경할게요. 이미 진행 중이라 고소장 내도 반려될 겁니다.”
‘참고인’과 ‘고소인’, 하늘과 땅 차이인 법적 권리
A씨 사례처럼 112 신고 등으로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시작한 사건을 ‘인지사건’이라 부른다.
이때 피해자는 법적으로 ‘참고인’ 신분에 가깝다. 반면, 피해자가 직접 범죄 사실을 알리며 처벌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제출하면 사건은 ‘고소사건’이 되고, 피해자는 ‘고소인’이라는 강력한 법적 지위를 얻는다.
법무법인(유한) 한별의 이주한 변호사는 “인지사건의 피해자는 수사 진행 상황 통지, 불송치 시 이의신청, 사건기록 열람 등 형사절차상 권리를 행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즉, 경찰이 수사 끝에 ‘혐의없음’으로 사건을 종결(불송치 결정)해도, 참고인 신분인 피해자는 그 결정에 불복할 공식적인 방법이 없는 셈이다.
모욕죄 처벌 원한다면? 고소장은 ‘선택 아닌 필수’
특히 A씨가 처벌을 원하는 ‘모욕죄’는 고소장 제출이 결정적이다. 법무법인 태희 민경남 변호사는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는 범죄(친고죄)이므로, 고소장 제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절차”라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아무리 강력한 증거를 제출해도, 고소장이 없다면 수사기관이 직권으로 모욕죄 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다. 가해자의 모욕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A씨는 반드시 고소장을 제출해야만 한다.
경찰의 ‘고소장 반려’ 발언, 정말일까?
그렇다면 담당 형사가 말한 ‘반려 가능성’은 사실일까? 다수의 변호사들은 “행정 편의상의 표현일 뿐, 법적으로 접수를 거부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베테랑 오승윤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정식으로 접수된 고소장을 반려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미 인지사건이 진행 중이더라도, 고소장이 접수되면 두 사건을 하나로 합쳐(병합)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변호사 서아람 법률사무소의 서아람 변호사는 “고소장을 낼 때 기존 사건번호를 적고 ‘기 인지사건에 병합 요청’ 문구를 넣으면 반려되지 않고 현재 사건기록에 합쳐진다”는 실무적인 조언을 덧붙였다.
내 권리는 내가 챙겨야… ‘고소장 제출’을 기억하라
결론적으로 112 신고로 경찰 수사가 시작됐더라도,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지키려면 별도의 고소장을 제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담당 형사의 말이 수사 협조를 위한 선의의 안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말만 믿고 절차를 생략하는 것은, 불송치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권 등 법이 보장한 최소한의 방어권마저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피해자의 권리는 누군가 챙겨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법이 허락한 절차 안에서 스스로 쟁취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