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업체에 당한 '다단계 사기', 국내 관련자들 왜 처벌하기 어려울까
해외 업체에 당한 '다단계 사기', 국내 관련자들 왜 처벌하기 어려울까
피해액만 200억 '다단계'⋯서울 지사 직원들 "우리도 피해자다" 주장
'처벌 가능성' 두고 변호사들 의견도 나뉘었지만
공통 조언은? "피해자들 모여 공동 대응 하라"

'대박 재테크'라고 생각하고 투자했는데, 알고 보니 다단계 금융사기였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게티이미지코리아
몇 달 전, A씨는 천금 같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발견한 해외투자사이트. 회원 모집을 통해 자본을 모아 비상장주식이나 해외선물옵션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회사였다. 본사는 해외에 있고, 서울 지사도 운영 중이었다. 여러 가지 자료를 살펴본 결과 믿을만한 회사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제시한 대로 연 15% 정도의 수익률이 보장만 된다면 '대박 재테크'라고 생각한 A씨. 이에 모아 놓은 돈 2000만원을 이곳에 맡겼다. 시간 날 때마다 사이트에 들어가 회원 유치와 투자상황을 보고, 회원들이 올린 댓글을 읽는 게 A씨에게 하나의 낙이 됐다.
그런데 3개월쯤 지나자 황당한 일이 생겼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접속되던 투자 사이트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깜짝 놀란 A씨는 서울 지사로 표시된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만난 건 A씨와 같은 피해자들. 어림잡아 수천명이 피해를 당했고, 전체 피해 금액은 200억이 넘었다. 믿을만하다고 생각했던 외국인 대표는 연락이 안 되고, 서울 지사에 있는 임원 등 관련자들은 "우리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A씨는 "다단계에 당한 것 같다"며 외국 대표는 물론 서울 사무실을 운영한 사람들도 고소 할 수 있을지 도움을 구했다. 사안을 검토한 변호사들의 의견은 갈렸다.
변호사들은 서울 사무실을 운영했던 관련자들을 처벌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법무법인 K-Law 김기범 변호사는 "실제 거래에서 서울 지사 간부들의 '편취' 증거가 보이지 않고, 돈이 모두 제일 윗선 외국인 쪽으로 흘러간 것으로 나오면, 한국인 관련자들에게 사기죄나 유사수신행위 처벌법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더불어 김기범 변호사는 이와 유사한 사례를 들며 이 주장을 뒷받침 했다. 김 변호사는 "IDS홀딩스 사건에서 모집책들은 '투자 모금이 불법인 줄 몰랐고, 자신들도 일부 투자한 만큼 피해자'라고 주장해 무죄 판결을 받은 전례가 있다"고 했고, "또 다른 대형사건인 밸류인베스트코리아 사건에서도 기소된 것은 회사 대표 한 명 뿐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다단계 금융사기에서 중간 단계 책임자에 대한 범죄 인정 여부는 사안별로 다르다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저스트의 신민호 변호사는 "다단계 금융사기의 경우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주범으로 당연히 죄가 인정되고, 그 바로 아래 단계에 있는 사람도 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다단계의 특성상 혼자서 조직을 운영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민호 변호사는 "경험에 비춰 볼 때 사무실을 운영한 사람에 대해서는 죄가 인정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며 "주범이 사기를 치고 있다는 걸 알고 이에 가담한 사실이 인정되면 죄가 인정되고, 주범의 말을 믿었을 뿐 사기라는 걸 몰랐다면 죄가 인정되지 않는 식"이라고 했다.
"따라서 국내 사무실 운영자를 고소하려면 △그가 다단계 사기라는 걸 알고 주범과 공모하였다는 점이나 △주범의 사기행각을 방조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정황을 최대한 많이 수집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렇게 변호사들의 의견도 갈리는 이 사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제일 좋을까.
법무법인 효현의 박수진 변호사는 "국내 지사 간부들이 피해자인지 아니면 가해자인지 여부는 조사하면 밝혀질 것"이라며 "일단 국내에 있는 다단계 윗선과 다단계로이익을 본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을 고소하라"고 조언했다.
박 변호사는 "특히 사무실을 차려 운영한 사람들은 다단계 피라미드에 없더라도 회사의 불법행위에 가담한 공동불법 행위자들이어서 고소가 가능하다"며 "피해자들이 힘을 합쳐 어느 선까지 고소할지 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공동법률사무소 인도의 안병찬 변호사는 "국내 임원들을 고소할 수 있으나 처벌 수위가 낮다"며 "임원들의 경제력을 고려해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이들에게 재산이 있으면 가압류 등의 보전조치를 취하라"고 조언했다.
법무법인 오라클(성남) 박현민 변호사는 " 서울 지사 관련자들을 고소할 때, A씨 혼자서 하기보다는 다른 피해자들과 공동으로 고소토록 하라"고 조언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공동으로 고소하는 것이 수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피해자가 다수이고 피해가 크다는 점이 더 잘 드러나고, 범행 수법 등이 명확해 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대표가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국제공조수사를 끌어내는 데도 효과적 일 것"이라 했다. 이와 함께 변호사 선임비용을 절감 할 수 있다고도 했다.
나우 법률사무소의 장준환 변호사도 "피해자가 여럿이고 피해액이 합쳐서 5억 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특정경제범죄법)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다 같이 고소해 구속 수사를 요구하는 방안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특정경제범죄법이 적용되면 형량도 훨씬 무거워지고, 수사기관도 사건을 더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신민호 변호사는 "요즘은 피해자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나 밴드 등이 있으므로, 힘을 합쳐 함께 고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다만,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의 경우 해당 업체 중간간부가 자기 책임을 면하기 위해 피해자 모임을 주도하기도 하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들 말했듯 피해자가 모이면 수사당국은 사건을 '서민다중피해범죄'로 분류해 보다 체계적으로 수사를 벌인다.
검찰은 지난해 3월 불법다단계·유사수신, 가상화폐 거래사기, P2P(개인 간 거래) 대출 빙자 사기, 재개발·재건축 비리 등으로 인한 서민 피해가 급증하자, 이들 범죄를 '서민다중피해범죄로 분류하고, 이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담팀을 발족시켰다.
이와 함께 지난해 8월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부패재산몰수법)이 개정된 것도 피해 구제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개정안은 법 적용 대상인 부패범죄 범위에 불법다단계·유사수신행위 등을 추가하고, 관련 사기 피해자들이 민사소송과 강제집행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형사재판이 확정되면 피해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