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14)]고쳐야 할 외계어, 잘못 쓰는 외래어
[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14)]고쳐야 할 외계어, 잘못 쓰는 외래어
법률용어 올바로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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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용어나 법률문장을 대하면 일상적인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여 뜻이 통하지 않는 말도 있다. /셔터스톡
10월 초가 되면 개천절에는 단군 할아버지가, 한글날에는 세종대왕이 생각난다. 한 분은 우리나라를 세운 분이고, 또 한 분은 우리 한글을 만든 분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법률용어나 법률문장을 대하면서 두 분께 송구하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자주 있다.
우리가 쓰는 법률용어는 대부분 한자로 되어 있는데, 주로 일본사람들이 서양 문물을 들여오면서 번역한 것들이다. 그러다 보니 법조문에 어려운 말이 수도 없이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여 뜻이 통하지 않는 말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선의(善意)와 악의(惡意)이다. 법조문 곳곳에 '선의의 제3자', '악의의 점유자' 등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선의와 악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착한 뜻', '나쁜 뜻'이 아니다. 선의는 어떤 사정을 모르는 것을 말하고 악의는 어떤 사정을 아는 것을 말한다. 이쯤 되면 법률용어는 외계인이 쓰는 말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내가 대학원생 때 1950년대 대법원 형사판결을 읽다가 "피해자의 후방에서 점차 접근한 가해자가 우측 족으로 피해자의 좌측 둔부를 강축하야 지상에 전도케 하였던바⋯"라는 문장을 보고 허리를 잡고 웃은 적이 있지만, 요새는 판결문이 많이 읽기 쉬워지긴 했다. 요새는 법률용어도 쉬운 말로 순화하려고 애를 쓰긴 한다. 다만, '환가(換價)'를 '현금화'로 바꾼 것처럼 잘못 바꾸거나 '사망한'을 '죽은'으로 쓸데없이 바꾸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법률용어를 아무리 우리말에 맞고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고 해도 이를 올바로 쓰지 않으면 헛일이다. 일상생활에서, 특히 언론 등에서 가장 흔하게 잘못 쓰는 용어가 '소송 제기'와 '청부'이다.
권리를 침해당한 사람이 법원에 자기 권리를 보호하는 내용의 판결을 해달라고 신청하는 행위를 '소(訴) 제기'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언론이나 법률가들, 심지어는 대법원 판결에서도 이를 '소송 제기'라고 쓴다.
'소'는 법원에 권리침해를 호소하는 일이고 '소송'은 그 호소가 법적으로 정당한지를 심판하는 '절차'이다. '제기'는 어떤 문제점을 들추어내는 행위이다. 따라서 제기의 대상은 소이지 절차인 소송이 아니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회의를 열 때 문제를 제기한다고 하지, 회의를 제기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민사소송법 입법자들은 이를 명확히 인식하여 법조문에서 '소송 제기'라고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와 '소송'이 말이 비슷하다고 제대로 구별하지 않고 마구 쓰다 보니 이제는 행정소송법에 '소송 제기'가 버젓이 한 자리 차지하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청부(請負)'는 본래 일본 민법에서 쓰는 말로, 남에게 일을 맡기고 그 일이 완성되면 보수를 주기로 하는 계약을 말한다. 한자로 쓰긴 하지만 그 한자로도 뜻이 통하지 않는 순 일본말이다. 일을 맡기는 자를 주문자(注文者), 일을 맡아 처리하는 자를 청부인이라 하고, 청부인이 다시 남에게 그 일을 맡기는 일을 하청(下請)이라고 한다.
우리 민법을 제정할 때 순 일본말 용어를 배제하고 한자로 뜻이 통하는 말로 바꾸면서, 이러한 계약을 '도급(都給)'이라 하고, 일본법의 주문자를 '도급인', 청부인을 '수급인(受給人)', 하청을 '하도급(下都給)'이라고 하였다. 그에 따라 원청업자는 '수급인', 하청업자는 '하수급인'으로 바꾸었다. 그것이 지금부터 무려 60년 전 일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아직도 순 일본말인 청부⋅원청⋅하청을 그대로 쓰고, 심지어는 언론에서도 뉴스 시간에 청부, 하청, 원청 등을 마구 쓰고 있다.
이처럼 아직도 자주 쓰는 일본말에 차압(差押), 외설(猥褻) 등도 있다. 이들도 우리 법에서는 압류(押留), 음란(淫亂)으로 고쳐 쓰고 있는데, 여전히 일반인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버젓이 외설과 차압 등의 말을 쓰고, 국어사전에도 버젓이 실려 있다.
이런 일본말들은 외국어일까, 외래어일까? 어떻든 식민통치의 잔재이다. 우리 국어사전도 정비가 필요하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잔재에서 벗어나서 살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