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정황 뚜렷한데 증거 안 된다니"…주호민 아들 사건, 대법원이 녹음기 배척한 이유
"학대 정황 뚜렷한데 증거 안 된다니"…주호민 아들 사건, 대법원이 녹음기 배척한 이유
결정적 증거였던 '몰래 녹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효력 상실 부모는 '제3자'

주호민 유튜브 캡쳐
웹툰 작가 주호민 씨의 발달장애 아들이 특수교사로부터 학대를 당했다며 제기된 소송이 예기치 못한 국면을 맞이했다. 가방 속에 몰래 넣어둔 녹음기가 사건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될 것이라 믿었던 부모들의 기대와 달리, 법원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증거 능력을 박탈했기 때문이다.
사건은 2022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 씨의 아내 A씨는 자폐 성향이 있는 아들의 가방에 녹음기를 켜둔 채 등교시켰다. 아들이 평소와 다른 불안 증세를 보이자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해당 녹음기에는 특수교사 B씨가 주 군에게 "진짜 밉상이네",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 거야", "친구들한테 못 가"라고 발언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녹음 파일을 근거로 B씨는 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해당 발언이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고 보았고, 1심 재판부 역시 학대 정황을 일부 인정하며 유죄 판결(선고유예)을 내렸다. 당시만 해도 아동학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부모의 비밀 녹음은 불가피한 '정당행위'로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상급심의 판단은 냉혹했다. 재판의 흐름을 뒤집은 것은 '사실관계'가 아닌 '법리'였다. 녹음된 목소리가 학대냐 아니냐를 따지기에 앞서, 그 녹음 자체가 법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불법 수집 증거'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법원은 왜 부모를 '타인'이라 불렀나
법적 반전의 핵심은 '통신비밀보호법' 해석에 있었다. 현행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쟁점은 부모가 이 대화의 당사자에 포함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법원은 부모를 철저히 '제3자'로 규정했다. 대법원은 판례(2020도1538)를 통해 "피해 아동의 부모가 법정대리인이라 할지라도, 교실 내에서 교사와 학생 간에 오간 대화의 당사자는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비록 아들이 장애가 있어 의사 표현이 어렵더라도, 부모가 그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이상 이는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또한 교실이라는 공간의 특성도 증거 능력을 배척하는 근거가 됐다. 교실 내 수업 시간 중 발언은 특정 학생들만 듣는 '공개되지 않은 대화'라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열린 공간이 아니므로 교사의 발언은 사생활의 비밀로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독이 든 나무의 열매는 먹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독수독과(이론)' 원칙의 적용이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독이 든 나무)에서 파생된 2차 증거(열매) 역시 인정할 수 없다는 법리다.
이번 사건에서 녹음 파일이 증거 능력을 잃자, 이를 토대로 작성된 녹취록은 물론, 녹음 내용을 듣고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교사의 피의자 신문 조서까지 줄줄이 효력을 상실했다. 학대 정황이 담긴 핵심 증거가 사라지면서 혐의를 입증할 수단 자체가 증발해버린 셈이다.
일각에서는 아동학대 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해 '위법성 조각 사유(정당행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를 보호할 다른 수단이 없었다는 긴급성을 피력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아동학대 방지라는 공익이 크다고 해도, 헌법이 보장하는 통신 비밀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할 수는 없다"며 선을 그었다.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 대안은 없나
이번 판결로 인해 교육 현장의 '몰래 녹음' 관행에는 제동이 걸렸지만, 동시에 말 못 하는 장애 아동이나 영유아의 학대 피해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에 대한 무거운 숙제가 남겨졌다.
현재 국회에서는 김예지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이 논의 중이다. 학대 의심 정황이 뚜렷할 경우 예외적으로 제3자 녹음을 허용하자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교원단체들은 "교사의 교육 활동이 24시간 감시당해 교육이 위축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입법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법조계 전문가는 "현재로서는 녹음기 외에 CCTV 확보, 아이의 신체적 상처 기록, 주변 목격자 진술 등 적법한 증거 수집에 집중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며 "제도적 보완이 이뤄지기 전까지 학대 피해 입증을 둘러싼 창과 방패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