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행패 숨기고 집 팔았어도…법원 “집 결함 아니니 돈 안 물어줘도 된다”
이웃 행패 숨기고 집 팔았어도…법원 “집 결함 아니니 돈 안 물어줘도 된다”
매도인에게 고지 의무 지울 수 없어
이웃 성향은 부동산 하자가 아니다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아파트 매매 계약 당시 아래층 거주자의 상습적인 행패와 분쟁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았더라도, 이를 '부동산의 하자'로 보아 계약을 취소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웃의 성향이나 괴롭힘은 주거지 자체의 결함이 아니며, 매도인에게 이웃과의 사적인 갈등까지 고지할 의무를 지우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밤마다 현관문 두드리고 욕설"⋯ 이웃 때문에 고통받은 매수인
A씨는 지난 2021년 7월, 공인중개사 C씨의 중개를 통해 B씨로부터 대전의 한 아파트를 2억 800만 원에 매수했다. B씨는 이 아파트에서 약 20년간 거주해온 집주인이었다. 하지만 A씨가 임대차 계약을 통해 들인 세입자가 입주하자마자 문제가 발생했다.
아래층 거주자가 밤마다 찾아와 현관문을 두드리고 욕설을 하는 등 행패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조사 결과 전 주인인 B씨 역시 과거 아래층 거주자와 층간소음 문제로 극심한 분쟁을 겪었으며, 아파트 관리사무소에는 관련 민원이 지속적으로 접수된 상태였다.
세입자로부터 거주가 불가능하다는 항의를 받은 A씨는 "중대한 하자를 숨기고 집을 팔았다"며 B씨와 중개사 C씨를 상대로 매매대금 반환 및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뒤집은 항소심 "이웃 성향은 부동산 자체의 하자 아냐"
1심 재판부는 매도인과 중개사의 책임을 일부 인정해 A씨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사건을 맡은 대전지방법원 제4-3민사부는 매수인 A씨가 제기한 주위적·예비적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매도인 B씨와 중개사 C씨의 승소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층간소음 등 주변 시설로 인한 상시적 소음은 고지 의무가 있을 수 있지만, 특정 거주자가 욕설이나 위협적인 행태를 보인다는 사정은 매매 목적물 자체의 물리적·법률적 하자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웃의 성향이나 분쟁 여부는 점유자가 누구냐에 따라 가변적인 것이어서 매매계약의 효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 사정으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사생활 고지 시 명예훼손 위험"⋯ 법원, 고지의무 범위 선 그어
재판부는 특히 매도인에게 이웃의 정보를 강제로 알리게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지적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이웃 사이의 불화는 사생활과 밀접한 영역으로, 이를 제3자에게 알리는 행위 자체가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며 "매도인이나 중개인에게 형사처벌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이웃의 성정을 고지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고 명시했다.
또한 "이웃과 과거에 분쟁이 있었는지 등을 일일이 파악해 새로운 매수인과의 분쟁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아래층 거주자의 행위가 사회통념을 벗어난다면 현재의 점유자가 직접 형사 고소나 손해배상을 청구해 해결할 문제이지, 전 주인에게 예측 실패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웃 이상 없냐"고 물었다면?⋯ 결론 달라질 수도
이번 판결은 매도인이나 중개인이 이웃 분쟁 사실을 자발적으로 고지하지 않은 경우를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매수인이 계약 전에 "주변에 문제 있는 이웃은 없느냐"고 먼저 물었는데, 중개인이 사실을 알면서도 "괜찮다"고 거짓으로 답했다면 어떨까.
법원은 공인중개사가 스스로 조사·확인할 의무가 없는 사항이라도, 중개의뢰인의 질문에 그릇된 정보를 진실인 양 전달해 계약에 이르게 했다면 성실중개의무 위반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22. 6. 30. 선고 2022다212594 판결).
고지의무 범위 밖이라도 '질문을 받고 거짓으로 답한 경우'라면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다.
공인중개사법도 같은 맥락이다. 중개대상물의 거래상 중요사항에 관해 거짓된 언행으로 의뢰인의 판단을 그르치는 행위를 금지하고(제33조 제1항 제4호), 이로 인해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면 배상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제30조 제1항).
이번 사건에서 법원이 중개인의 책임을 부정한 핵심 근거는 '자발적 고지의무의 부존재'였다.
바꿔 말하면, 매수인이 먼저 구체적으로 질의했고 중개인이 이를 알면서도 허위로 답한 사정이 있었다면 판단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