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8천만 원 합의금 들이밀어도 감옥행…수면제 악용한 계획적 성범죄에 징역형 선고
[단독] 8천만 원 합의금 들이밀어도 감옥행…수면제 악용한 계획적 성범죄에 징역형 선고
합의금 8천만 원으로도 '강간치상' 징역 못 피한 이유
약물 투여는 곧 상해
![[단독] 8천만 원 합의금 들이밀어도 감옥행…수면제 악용한 계획적 성범죄에 징역형 선고 기사 관련이미지](https://d2ilb6aov9ebgm.cloudfront.net/1774940326277582.png?q=80&s=832x832)
권고 용량 이하의 수면유도제로 피해자를 일시적으로 재웠더라도, 법원은 이를 생리적 기능 장애로 보아 강간치상죄의 상해를 폭넓게 인정하고 실형으로 엄단한다.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피를 흘리거나 뼈가 부러져야만 상해를 입은 것일까. 일반적인 인식은 그렇다.
그러나 법의 잣대는 다르다.
겉보기에 아무런 상처가 없더라도, 약물로 타인의 의식을 강제로 잃게 한 행위 자체를 신체 기능에 대한 상해로 간주해 훨씬 무거운 처벌을 내리는 것이 법원의 확립된 판단 기준이다.
"밥 사줄게" 한마디 뒤에 숨긴 수면유도제
2022년 5월 온라인 채팅방에서 알게 된 A씨와 B씨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이 이 기준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A씨는 2023년 1월 B씨에게 밥을 사주겠다며 불러낸 뒤, 미리 준비한 수면유도제를 숙취해소 음료에 몰래 타서 마시게 했다.
B씨가 약효로 잠이 들자 A씨는 B씨를 모텔로 부축해 데려가 강간했다.
이 사건에서 눈에 띄는 폭행이나 외상은 없었다.
그럼에도 법원은 A씨의 행위를 단순 성범죄가 아닌 강간치상죄로 무겁게 다루었다.

법원이 '보이지 않는 상해'를 인정한 근거
외상이 없어도 법원이 상해를 인정한 근거는 무엇일까.
약물을 투여해 일시적으로 수면이나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렸다면, 눈에 보이는 외상이 없어도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한 '상해'에 해당한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재판 과정에서 A씨 측 변호인은 "피해자가 복용한 수면유도제의 양이 1회 권고 용량을 초과하지 않으므로 법리적으로 상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방어했다.
그러나 대법원 2017도3196 판결에 따르면, 수면유도제와 같은 약물로 피해자를 일시적 수면 상태에 이르게 한 경우 외부적으로 드러난 상처가 없고 사후 자연적으로 의식을 회복했더라도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된 것으로 간주된다.
1심 재판부 역시 이 판례를 근거로, A씨의 행위가 피해자의 생리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했다고 보아 강간치상죄에서의 상해를 인정했다.
8천만 원으로도 지울 수 없었던 죄책
A씨는 재판 단계에서 피해자 B씨에게 8천만 원을 지급하며 합의에 이르렀고, 피해자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초범이라는 점, 늦게나마 범행을 인정한 점 역시 법률상 감경 요소로 작용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러한 유리한 정상을 인정하면서도, 수면유도제를 미리 빻아 음료에 몰래 타는 등 강간을 목적으로 한 치밀하고 계획적인 범행 수법의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피해자가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음에도 수사기관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범행을 줄곧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은 태도가 더해져, 최종적으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이어진 항소심에서 부산고등법원 2024노82 재판부는 1심의 선고형이 피고인의 책임에 비추어 부당하지 않다고 보아 쌍방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결국, 계획적인 약물 사용이라는 불량한 범행 수법과 재판 초기 반성 없는 태도가, 거액의 합의금과 처벌 불원이라는 강력한 유리한 정상을 압도한 것이다.
'단순 강간'과 '강간치상', 그 한 끗 차이
이 사건을 통해 확인된 두 죄명을 구분하는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다.
상해의 확장된 법적 정의
상해는 물리적 훼손에 국한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육체적·정신적 생리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약물 투여의 상해 인정 요건
투여된 약물이 권고 용량 이하이거나 부작용이 크지 않더라도, 피해자를 의식불명이나 수면 상태로 만들었다면 생활 기능에 장애가 초래된 것으로 보아 상해 요건을 충족한다.
외부 상처 및 회복 여부와의 무관성
약물 투여 후 자연스럽게 깨어나고 몸에 멍이나 상처가 없더라도 상해죄 성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합의와 처벌의 관계
강간치상죄처럼 법정형의 범위가 징역 2년 6개월에서 15년에 이르는 중범죄의 경우, 피해자와 합의하더라도 범행 경위가 불량하고 초기 반성이 없으면 실형을 피하기 어렵다.
의식을 빼앗는 순간, 형량도 달라진다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는 피해자가 저항조차 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를 악용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강간보다 훨씬 질이 나쁜 범죄로 취급된다.
이번 판결은 눈에 띄는 폭력이 없었더라도, 타인의 의식을 강제로 잃게 만드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신체 기능에 대한 중대한 상해임을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