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자끼리 '모임통장' 썼을 뿐인데…'보이스피싱 공범'으로 몰린 사장님
동업자끼리 '모임통장' 썼을 뿐인데…'보이스피싱 공범'으로 몰린 사장님
'사업용 공금 통장' 입증이 핵심
범죄 '고의성' 없었다는 점 적극 소명해야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가게 자금 관리를 위해 모임통장을 썼을 뿐인데, 경찰이 보이스피싱 공범이라며 조사받으러 오라고 합니다.” 동업자들과 함께 작은 가게를 운영하던 A씨는 어느 날 경찰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았다.
자신의 명의로 된 통장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것이다. A씨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수사관은 “계좌를 공유하는 건 불법”이라며 그를 압박했다.
핀테크 시대의 편리한 금융 서비스가 어떻게 한순간에 범죄의 낙인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A씨는 몇 년 전, 아는 형 두 명 그리고 그들이 데려온 한 명과 함께 총 넷이서 돈을 모아 가게를 차렸다. 사업자 등록과 자금 관리는 A씨 명의로 하기로 했다.
투명한 회계를 위해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토스 모im통장’을 개설했고, 동업자 4명 모두를 모임원으로 추가해 함께 자금을 관리했다. 하지만 최근 가게 일에 소홀해진 사이, 상상치도 못한 일이 터졌다.
형들이 데려왔던 동업자 B씨가 보이스피싱 사기범으로 구속된 것이다.
경찰이 문제 삼은 것은 A씨 명의의 바로 그 모임통장이었다.
A씨는 “B씨는 통장을 직접 사용한 적도 없고, 이상한 거래 내역도 전혀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B씨와 관련된 거래는 동업을 그만둘 때 다른 동업자가 투자금 300만 원을 돌려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수사관의 태도는 단호했다. “지금 자백하는 거냐”는 말에 A씨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수사관의 한마디 '계좌 공유는 불법'…정상적 금융 서비스가 어째서?
수사관이 언급한 ‘불법 계좌 공유’는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조항은 대가를 받고 통장이나 카드 같은 접근매체를 빌려주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범죄 수익을 세탁하기 위해 타인 명의의 통장, 즉 ‘대포통장’을 구하는 전형적인 수법이기 때문이다. 혐의가 인정되면 이 법에 따라 처벌받거나, 형법상 ‘사기방조죄’까지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A씨의 사례는 일반적인 대포통장 거래와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한대섭 변호사(모두로 법률사무소)는 “토스 모임통장은 본래 여러 명이 함께 돈을 모으고 경비를 지출하는 ‘공동 관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금융 상품”이라며 “그 기능에 맞춰 동업자들을 모임원으로 추가했을 뿐, 불법적인 대여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수사기관의 ‘불법 공유’ 프레임을 ‘합법적 공동 관리’로 전환하는 것이 첫 단추다.
'고의성' 없었다는 증거, 어떻게 마련하나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A씨에게 보이스피싱 범죄를 도우려는 ‘고의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김준성 변호사(법무법인 공명)는 “범죄에 연루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담자처럼 범죄 가담 의사 없이 행위하지만, 수사기관과 법원은 여러 사정을 종합해 고의성을 판단한다”며 “범죄의 고의가 없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사건의 주된 쟁점”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을 넘어, 몰랐다는 사실을 객관적 증거로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변호사들은 ▲계좌 개설 목적과 자금 흐름 ▲문제 인물의 거래 관여 부재 ▲범죄 인식 부재 등 세 가지를 명확히 제시하라고 입을 모은다.
조기현 변호사(법무법인대한중앙)는 “계좌 내역 전체를 출력해 사업 관련 입출금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보이스피싱 관련 입출금이 없음을 소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300만 원 송금에 대해서도 “범죄 수익 전달이 아닌, 정상적인 동업 관계 정산 절차였다”고 그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한다.
억울함 호소하다 '실형'까지…초기 대응이 운명 가른다
“억울하다”는 하소연만으로는 부족하다.
대응을 잘못하면 사기방조죄 등으로 집행유예 없는 실형이 선고될 수도 있다. 일단 혐의가 인정되면 형사 처벌은 물론,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제기하는 민사소송까지 떠안게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수사 초기 단계부터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일관되고 논리적인 진술 전략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아람 변호사(변호사 서아람 법률사무소)는 “수사관의 압박 질문에 위축되거나 당황하지 말고, 준비한 사실관계만 차분하게 진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가능하다면 거래내역, 모임통장 이용약관 캡처, 사업 관련 증거 등을 미리 정리해두고 변호인과 함께 조사에 임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동업이라는 신뢰 관계 속에서 사용한 편리한 금융 서비스가 범죄의 덫이 되지 않으려면, 그 시작부터 끝까지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이 A씨 앞에 놓여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