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인 줄 알았던 남친의 배신…'총각 행세' 유부남, 법의 심판대에
'외과의사'인 줄 알았던 남친의 배신…'총각 행세' 유부남, 법의 심판대에
직업·신분 속인 연인에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소송 잇따라…법원 "혼인 여부는 중대 사실", 위자료 액수는?

의사 행세를 한 유부남 남자친구는 직업 사칭만으로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 하지만 혼인 사실을 속인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 위자료 청구가 가능하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하
3개월 사귄 '의사 남친'이 유부남이었다면, 법원은 그의 거짓말에 얼마의 가격표를 붙일까?
자신을 외과의사라 소개한 남자와 3개월간 교제한 A씨. 그는 “부모님이 선을 보라고 한다”는 말을 남기고 하루아침에 잠적했다.
충격에 빠진 A씨가 수소문 끝에 알아낸 사실은 그가 의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유부남일지 모른다는 끔찍한 의심이었다. A씨는 이 남성을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직업 사칭은 '애교', 혼인 사기는 '중대 범죄'
변호사들은 남성의 '혼인 여부'가 소송의 성패를 가를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직업이나 재력을 속인 것만으로는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대한중앙의 조기현 변호사는 “직업을 속인 것만으로 민사 손해배상이 인정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면서도 “그러나 상대방이 유부남인 점을 속였다면 소송을 제기해 승소할 수 있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연애 시장에서의 가벼운 거짓말과 상대방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혼인 사실 은폐'는 법적 책임의 무게가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다.
내 성적 자기결정권의 값어치…법원의 계산법
법원은 혼인 사실을 속이고 맺은 성관계에 대해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불법행위로 판단, 위자료(정신적 손해배상)를 인정하는 추세다.
변호사 서아람 법률사무소의 서아람 변호사는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란, 상대방이 유부남인 사실을 알았다면 성관계를 맺지 않았을 것인데, 그 거짓말로 인해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는 뜻”이라고 쉽게 풀이했다.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 액수는 교제 기간, 기망의 정도, 성관계 횟수 등에 따라 달라진다. 법무법인 에스엘 이성준 변호사는 “약 7개월 교제한 사례에서 1,500만 원, 약 3~4개월 교제한 사례에서 800만 원의 배상액이 인정됐다”며 최근 판례를 소개했다. 통상 300만 원에서 수천만 원 사이에서 위자료가 결정된다.
피해자에서 '상간녀'로?…소송의 역설
하지만 '총각 행세'에 속아 교제한 여성이 오히려 '상간녀'로 몰릴 수 있다는 역설적인 위험도 존재한다. 남성의 아내가 자신의 남편과 교제한 여성을 상대로 상간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캡틴법률사무소의 박상호 변호사는 “상대방 배우자가 의뢰인을 '상간녀'로 평가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빠르게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에 대한 소송을 먼저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내가 상대방의 기망 행위에 속은 '피해자'라는 사실을 법적으로 먼저 인정받아, 향후 제기될 수 있는 상간 소송에서 방어해야 한다는 전략이다.
입증은 오롯이 나의 몫…'스모킹 건'을 찾아라
법정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결국 '입증'의 벽을 넘어야 한다. 상대방이 유부남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가 혼인 사실을 적극적으로 숨겼다는 점을 모두 피해자가 증명해야 한다.서아람 변호사는 “상대방이 총각 행세를 했던 통화 녹음, SNS 메시지, 문자 등이 증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제 당시 주고받은 메시지, 통화 녹음, 숙박업소 결제 내역 등 '총각 행세'를 입증할 모든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만약 상대방의 신상정보를 몰라 혼인 여부 확인이 어렵더라도, 소송을 제기한 뒤 법원을 통해 사실조회를 신청하면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만적인 연애에 무너진 마음을 법적으로 보상받는 길은 이처럼 철저한 증거 수집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