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110% 받고 투표용지는 절반만 인쇄한 선관위…열흘 간의 진상조사 결과는?
예산 110% 받고 투표용지는 절반만 인쇄한 선관위…열흘 간의 진상조사 결과는?
선관위 진상규명위 조사 결과 발표
단톡방 빗발친 SOS에도 '속수무책'
조현욱 위원장 "사무총장 등 간부급 수사 의뢰 권고"

지방선거 당일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됐고, 선관위 간부들에 대한 수사 의뢰와 징계가 권고됐다. /연합뉴스
투표용지가 모자라 유권자가 발길을 돌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 원인은 선관위의 얄팍한 '행정 편의주의'였다.
단톡방에 빗발친 SOS…"손으로 일련번호 쓰다 시간 다 버렸다"
지방선거 당일 투표소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동 간사와 서기들은 단체 채팅방에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며 다급한 구조 요청을 보냈다. 여기저기서 "몇 매가 부족하다", "언제 오냐"는 메시지가 동시다발적으로 빗발쳤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직원들은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투표는 중단됐고, 하염없이 기다리던 유권자들은 소중한 한 표를 포기한 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선관위가 속수무책이었던 이유는 황당했다. 예비용으로 보유한 무번호 투표용지(일련번호가 기재되지 않은 용지)에 일일이 손으로 번호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무려 7종의 투표용지가 필요했다. 서울시 선관위로부터 번호를 받아 손으로 7종의 용지에 적어 내려가다 보니 한계에 부딪혔고, 뒤늦게 번호를 찍는 기계를 찾아내 연습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예산은 110% 받았으면서 인쇄는 50%만…이유는
애초에 투표용지 인쇄 예산은 전체 유권자 수의 110%로 배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용지가 부족했을까. 선관위가 실제로는 유권자의 50%에 해당하는 용지만 인쇄했기 때문이다.
조현욱 중앙선관위 진상규명위원장은 2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라고 지적했다.
조 위원장은 "많이 인쇄하면 일일이 다 검수해야 되고 또 보관을 계속해야 되고 폐기하는 데도 절차상 비용상 문제가 있다"는 일선 직원들의 의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투표용지가 많이 남으면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하지만 국민의 참정권 보호보다 행정적 편의를 앞세운 결정은 결국 '투표 불가'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선관위 간부들 줄줄이 수사 의뢰
진상규명위원회(위원회) 조사 결과,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만 12명이 투표하지 못하고 돌아간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 1만 4288개 투표소 중 26곳에서 투표가 일시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다.
현재 국민의힘은 총 11곳에 대해 선거무효 소청을 제기한 상태다. 선관위는 투표를 하지 못한 유권자 수를 개표 결과와 대비해 당락에 영향을 미쳤는지 판단하게 된다.
사태의 책임을 묻기 위해 위원회는 선관위 최고위직들에 대한 수사 의뢰를 권고했다.
조 위원장은 "중앙선관위원장은 투표를 총괄하는 지위에 있고, 상임위원은 관리·감독 지위에 있으며, 사무총장은 50% 하한 축소 인쇄 지침을 전결한 사실상의 책임자"라며 수사 의뢰 배경을 설명했다.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하고 늑장 대응한 서울시 및 송파구 선관위 간부들에 대해서도 징계를 권고했다.
이 밖에도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의 잦은 비출근과 배우자 동반 해외 출장 등 도덕적 해이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조 위원장은 부인 동반 해외 출장에 대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일"이라며 "이런 일은 이제 좀 절제가 돼야 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위원회는 비상임인 위원장직을 상근제로 전환하고, 선관위를 외부 독립 감사관의 직무감찰 범위에 포함시키는 한편, 투표용지 기본 인쇄율을 70%로 상향하는 등의 근본적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한편, 선거 직후 논란이 됐던 개표 결과 집계 오류나 이른바 '쌍둥이 득표' 의혹에 대해 조 위원장은 "직접 작성된 투표·개표 상황표를 다 봤다"며 "고의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무상 실수이거나 우연"이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