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고소하자 '공갈범' 낙인…피해자를 두 번 울린 적반하장 가해자
성희롱 고소하자 '공갈범' 낙인…피해자를 두 번 울린 적반하장 가해자
법률 전문가들 “정당한 권리 행사는 공갈 아냐…오히려 가해자가 협박·공갈죄”

성희롱 피해자의 고소 예고에 가해자가 공갈죄로 역고소 협박하는 2차 가해가 발생했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고소하면 너는 공갈범” 성희롱 피해자에게 쏟아진 황당한 역고소 협박, 법의 판단은?
성희롱 피해 사실을 알렸을 뿐인데, 순식간에 '공갈범'으로 몰렸다. 익명의 가면 뒤에서 날아온 모욕적인 메시지에 법적 대응을 예고하자, 사과 대신 돌아온 것은 피해자를 범죄자로 모는 황당한 협박이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뀌는 이 기막힌 순간, 법의 저울은 과연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한 시민이 겪은 사건을 통해 성범죄 피해자를 옥죄는 '역고소' 협박의 실태와 법적 해법을 짚어본다.
“고소하겠다” 한마디에 ‘공갈범’으로…피해자에서 피의자로 뒤바뀐 순간
사건은 랜덤 채팅 앱에서 시작됐다. 피해자 A씨는 한 남성으로부터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받았다. 이는 명백히 ‘통신매체이용음란죄(성폭력처벌법 제13조)’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였다.
A씨가 “통매음으로 고소하겠다”고 대응하자, 가해자의 태도는 180도 돌변했다. 그는 “공갈 협박으로 역고소하겠다”며 “변호사 비용은 물론 사업 운영비 손해까지 모두 청구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심지어 “운전하다가 그쪽을 칠 수도 있다”는, A씨의 신변을 직접 위협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성범죄 피해를 바로잡으려던 A씨는 순식간에 2차 가해와 신체적 위협이라는 이중의 공포에 내몰렸다.
“그건 범죄가 아닙니다”…법률가들이 가해자에게 ‘협박죄’ 경고한 이유
과연 범죄 피해를 알리며 고소하겠다는 예고가 ‘공갈죄’가 될 수 있을까? 법률 전문가들은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했다.
법무법인 베테랑의 윤영석 변호사는 “범죄 피해 사실을 근거로 고소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청구권의 정당한 행사”라며 “이를 공갈이나 협박으로 보는 것은 법리를 심각하게 오해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오히려 그는 “고소를 막기 위해 변호사 비용 등을 언급하며 위협하는 가해자의 행위가 공갈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역설했다.
법률사무소 유(唯)의 박성현 변호사 역시 가해자의 행위가 더 큰 범죄를 구성한다고 경고했다. 박 변호사는 “‘운전 중에 칠 수도 있다’는 발언은 피해자의 신체에 직접적인 해악을 가하겠다는 명백한 ‘해악의 고지’”라며 “그 자체로 협박죄(형법 제283조) 성립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금전을 요구하며 고소를 못하게 막는 행위는 공갈미수죄(형법 제350조)에 해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감정’ 아닌 ‘증거’로…2차 가해 막는 현명한 법적 대응법
다만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법적 대응에 나설 때 신중해야 할 지점도 있다고 조언한다. 바로 ‘무고죄(형법 제156조)’의 함정이다. 무고죄는 타인이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신고했을 때 성립하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다.
따라서 감정적인 대응으로 사실관계를 부풀리거나 성립하기 어려운 혐의를 무리하게 주장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번 사건처럼 가해자의 행위가 통매음, 협박, 공갈미수 등 여러 혐의에 해당할 가능성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전문가들은 “채팅 기록 등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고 법률 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가해자와의 불필요한 언쟁 없이 수사기관에 차분히 사건을 접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불운을 넘어, 성범죄 피해자를 침묵시키려는 ‘역고소 협박’이라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위축시키는 2차 가해 행위에 대해 사법부가 엄정한 잣대를 적용해, ‘피해를 호소하면 되레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