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면 용서한다더니” 1심 실형 후 연락했다가 ‘2차 가해’ 덫에 걸린 남성
“사과하면 용서한다더니” 1심 실형 후 연락했다가 ‘2차 가해’ 덫에 걸린 남성
법조계 피해자 거부 의사 명확하면 어떤 접촉도 스토킹 범죄될 수 있어
변호인 통한 합의나 형사공탁이 유일한 길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강제추행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A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고, 그는 항소심에서 형량을 낮추기 위해 피해자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법원을 통하라'는 차가운 답변이었다.
감형을 위한 사과가 오히려 '2차 가해'라는 더 큰 덫이 될 수 있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사과하면 용서해준다더니" 굳게 닫힌 합의의 문
사건의 시작은 한 지인이 보여준 카카오톡 대화였다. 거기엔 'A씨가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피해자가 받아줄 것'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본 A씨는 곧장 피해자에게 사죄의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피해자는 직접 답하지 않고, 남자친구와 이야기하라고 했다.
A씨는 피해자의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14분에 걸친 통화에서 그는 거듭 "죄송하다", "사죄하겠다", "직접 만나 뵙고 싶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며칠 뒤 돌아온 답변은 절망적이었다. 피해자의 남자친구는 "피해자는 사적인 사과나 연락을 원하지 않습니다. 모든 절차는 법원을 통해주세요"라며 선을 그었다. A씨의 '진심'이 담긴 사과는 그렇게 거절당했다.
계속된 연락, '진심'일까 '2차 가해'일까?
A씨는 혼란에 빠졌다.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할까, 아니면 남자친구를 통해서라도 계속 사죄의 뜻을 전해야 할까. 이 질문에 법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멈추라'고 경고했다.
법무법인 창경의 김찬협 변호사는 "남자친구 역시 거절 의사를 표현했기 때문에 계속 연락하는 것은 2차 가해 내지 별도의 스토킹 범죄 이슈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리버티의 김지진 변호사 역시 "피해자에게 직접 합의를 요청하는 행위 자체가 2차 가해에 해당될 수 있고 별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남자친구도 대리인이 될 수 없기에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피해자의 남자친구는 법적으로 합의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제3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경고는 명확하다.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힌 이상, 어떠한 형태의 개인적 접촉도 '진심을 전하려는 노력'이 아닌 '피해자를 괴롭히는 가해 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항소심 재판에서 피고인에게 매우 불리한 양형 사유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나? 전문가들이 제시한 '두 가지 길'
개인적인 소통의 문이 닫혔다고 해서 감형을 위한 노력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법이 정한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첫 번째 길은 '변호인을 통한 공식 합의 시도'다. 법무법인 공명의 김준성 변호사는 "가해자가 직접 합의를 시도할 경우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며 "반드시 변호인이 합의를 시도하게 해야 한다.
항소심 첫 기일 전에 합의서가 제출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바로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해 당사자가 아닌 법률 대리인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피해자의 심리적 부담을 덜고, 합의 가능성을 높이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두 번째 길은 '형사공탁' 제도다. 피해자가 합의 자체를 거부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법률사무소 태희 민경남 변호사는 "형사공탁은 피해자에게 일정한 금액을 공탁소에 맡겨놓고, 피해자가 언제든지 그 금액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라며 "피해 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재판부에 보여줄 수 있어 합의에 준하는 감형 사유로 참작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돈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되는 셈이다.
한 줄기 희망이라 믿었던 '사과'가 더 큰 위협이 되어 돌아온 지금, A씨는 법의 냉정한 절차 앞에서 자신의 '진심'을 증명해야 하는 또 다른 시험대에 올랐다.
섣부른 감정적 호소가 아닌, 법률 전문가와 함께하는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대응만이 실형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