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에 "교장 기생충" 플래카드 붙인 교사… 법원 "날짜는 면죄부 안 돼"
만우절에 "교장 기생충" 플래카드 붙인 교사… 법원 "날짜는 면죄부 안 돼"
'빗쟁이'로 살짝 바꿔 써도 소용없었다
벌금 70만 원 선고

만우절에 교장을 “기생충”이라 적은 플래카드를 내건 현직 교사에게 법원이 모욕죄를 인정해 벌금 70만 원을 선고했다. /셔터스톡
거짓말과 장난이 허용되는 4월 1일 만우절. 학교장을 향해 "기생충"이라며 공개적으로 조롱한 현직 교사에게 법원이 유죄를 선고했다.
의정부지방법원 김천수 판사는 모욕 혐의로 기소된 고등학교 교사 A씨에게 벌금 70만 원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사건은 지난 2022년 4월 초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사 A씨는 자신의 성과상여금 지급 등급에 불만을 품었다. 이후 분을 삭이지 못한 그는 학교 2층 복도와 외부 담벼락에 종이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플래카드에는 자신의 성과급에 대한 불만과 함께 피해자인 B교장을 겨냥해 "부정 척결 부패 타도 빗쟁이 교장 물러나라!! 평교사 피를 빠는 기생충 관리자는 물러나라!!!"라는 원색적인 내용이 담겼다.

"해학적 표현" 주장에 법원 "만우절이 면죄부 될 수 없어"
법정에 선 A씨 측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범행 일시가 만우절인 4월 1일경이었음을 강조하며, "피해자의 업무 태도를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해 모욕할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빚쟁이'를 '빗쟁이'로 비틀어 쓴 것 역시 부드러운 해학의 증거이며,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당행위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단호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플래카드를 게시한 날이 만우절이라고 하여도, 만우절에 모욕적 표현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한 사정은 모욕죄 성립 여부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표현 수위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누구나 쉽사리 '빗쟁이'가 '빚쟁이'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고, '기생충'이라는 표현 역시 일반적으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용어"라고 지적했다.
가장 크게 적힌 등급…공익 목적 아닌 '사적 앙갚음'
피고인의 행위가 공익적 목적이 아닌 개인적 앙갚음이라는 점도 유죄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플래카드에서 성과급 불만을 적은 '부끄럽습니다! A등급 교사' 부분이 가장 크게 인쇄된 점을 짚었다.
이를 바탕으로 "피해자를 모욕한 주된 목적은 공적 영역에 해당하는 학교장으로서의 행동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성과급 평가에 관한 불만을 표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학교 앞 빚 독촉 시위? "사적 문제이자 명백한 불법 추심"
실제 재판 과정에서는 교장이 교직원에게 돈을 빌리고, 빚을 받으려는 채권자가 학교 앞까지 찾아와 1인 시위를 벌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학교의 책임자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처신임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법원은 이 지점에서 '공'과 '사'를 명확히 나눴다. 교장이 빚을 진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사생활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특히 재판부는 "채권자가 직장인 학교에 찾아와 시위한 것은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엄연한 불법 행위"라고 꼬집었다.
직장에 찾아와 망신을 주는 등 빚 독촉을 하는 것은 현행법이 금지하는 불법 추심이므로, 이는 채권자의 범법 행위일 뿐 교장이 학교장으로서 책임질 공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논리다.
이어 재판부는 "교직원에게 소액을 빌린 사실이 있더라도, 그것이 학생들이 모두 볼 수 있는 공개적인 공간에서 교장을 조롱하고 모욕할 정당한 명분이 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명예 실추 컸다" 벌금 70만 원
재판부는 "초범이고 욕설과 같은 저급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점은 유리한 요소이나, 피해자의 직장인 학교에 플래카드를 게시해 외부적 명예를 크게 실추시켰다"며 벌금형을 선고한 양형 사유를 밝혔다.
웃어넘길 수 있는 가벼운 농담은 만우절의 특권이다. 그러나 그 화살이 타인의 인격을 향할 때, 법은 달력의 날짜를 참작해주지 않는다.
[참고] 의정부지방법원 2023고정66 판결문 (2023. 8. 10.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