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낙상 배달기사, '나몰라라' 건물주 상대 소송 가능할까
눈길 낙상 배달기사, '나몰라라' 건물주 상대 소송 가능할까
전치 6주 중상에도 "법대로 하라"는 건물주…CCTV 확보한 배달기사의 '나 홀로 소송', 법적 쟁점과 승소 전략을 짚었다.

눈 쌓인 계단에서 다친 배달기사가 제설 의무를 소홀히 한 건물주와 법적 다툼 중이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관리 소홀' 건물주 vs '본인 부주의' 배달기사…법의 저울은 누구에게
"쿵, 6주 진단"…눈길에 미끄러진 배달기사, 돌아온 건 "법대로 하라"
펑펑 쏟아지는 눈 속에서 배달기사 A씨의 하루가 '쿵' 소리와 함께 무너졌다. 원룸 건물 계단에 쌓인 눈에 미끄러져 회전근개(어깨 힘줄)가 파열되는 전치 6주의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건물주에게선 "법대로 하라"는 싸늘한 답변만 돌아왔다. 당장 생계가 막막해진 A씨는 사고 장면이 담긴 CCTV 영상 하나를 손에 쥔 채, 시설물배상책임보험조차 가입하지 않은 건물주를 상대로 외로운 법적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내 집 앞 눈은 내가"…법이 정한 건물주의 '제설 의무'
이번 사건의 법적 심판은 건물주의 '공작물 관리 책임'을 인정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우리 민법 제758조는 건물의 설치나 보존에 하자가 있어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1차적으로 소유자가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특히 자연재해대책법은 건물 관리자가 건물 주변의 눈과 얼음을 치워야 할 '제설·제빙 의무'를 규정하고 있어, 눈 쌓인 계단을 방치한 것은 명백한 '보존상의 하자'로 볼 여지가 크다.
김경태 변호사는 "CCTV 영상과 현장 사진으로 건물주가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한 점이 입증된다면 승소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알고도 밟았지 않나"…법정서 따져 물을 '본인 부주의'
물론 법정에서는 A씨의 과실도 일부 따져볼 가능성이 있다. 이장주 변호사는 "눈이 오는 날이었던 만큼 계단을 오르내릴 때 스스로 조심해야 할 '주의 의무'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즉, 건물주의 관리 소홀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위험을 인지한 상태에서 조심하지 않은 A씨의 부주의도 손해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재판에서는 양측의 과실 정도를 비교해 배상 책임 비율을 정하는 '과실상계'가 이뤄질 전망이다.
판례는 '건물주 80% 책임'…그래도 20%는 '피해자 몫'
다행히 과거 유사 판례는 A씨의 소송에 중요한 기준점을 제시한다. 법원은 통상 시설물 관리자의 책임을 더 무겁게 판단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2023년 의정부지방법원은 비슷한 계단 낙상 사고에서 건물주의 책임을 80%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법원은 피해자가 "계단 높이가 불규칙하거나 균열이 없는지 살피는 등 스스로 안전을 확보할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피해자의 과실을 20%로 판단했다. 이는 시설 안전 유지의 근본 책임은 건물주에게 있지만, 보행자 스스로도 조심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보험 없다" 배 째는 건물주?…'가압류'로 돈줄부터 묶어라
A씨가 마주한 가장 큰 현실의 벽은 건물주가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송에서 이겨도 건물주가 "돈이 없다"며 버티면 판결문은 종이조각에 그칠 수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소송과 동시에 '가압류' 절차를 밟으라고 입을 모은다. 가압류란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상대방이 재산을 빼돌리지 못하도록 건물주의 부동산이나 예금 등을 미리 묶어두는 법적 조치다. 승소 후 이 가압류된 재산을 통해 판결금을 강제로 받아낼 수 있는 강력한 안전장치인 셈이다.
치료비·휴업손해·위자료까지…'나 홀로 소송'의 값진 결과는?
소송에 앞서 변호사 명의로 '내용증명'을 보내 합의를 시도하는 것도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방법이 될 수 있다. A씨의 경우 치료비는 물론, 일을 하지 못해 발생한 손해(휴업손해)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까지 청구할 수 있다.
예상 청구액은 수백만 원에서 최대 천만 원 이상에 이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