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다 했는데 돈은 공중에…원청 부도나자 발주처는 ‘나 몰라라’ 공탁 통보
일 다 했는데 돈은 공중에…원청 부도나자 발주처는 ‘나 몰라라’ 공탁 통보
변호사들 “직접지급은 법적 의무, 공탁은 회피 수단일 수도”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A사는 2025년 초, 원도급사와 계약을 맺고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에 참여했다. 시작은 순조로웠지만, 불길한 신호는 곧 나타났다. 3월에는 발주처가 원청에 지급한 선금이 A사에 제대로 내려오지 않았고, 5월부터는 매달 받아야 할 공사대금마저 끊겼다.
불안감 속에서 공사를 이어가던 A사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지난 9월, 원청사의 법정관리(회생절차) 신청 소식이었다. 당장 공사 중단과 직원들 월급 걱정에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A사는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제14조, 즉 원청이 파산 등으로 돈을 줄 수 없을 때 발주처가 하도급업체에 직접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항이었다. A사는 이 법을 근거로 발주처 기관에 밀린 대금을 직접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기관은 ‘과거에 지급한 선금과 중복될 수 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원청의 확인이 필요하다’, ‘채권 가압류 등 법적 분쟁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대며 지급을 미뤘다.
결국 기관은 돈을 법원에 맡기는 공탁을 하겠다고 통보했다. 당장 돈이 급한 A사에게는 사실상 ‘다른 채권자들과 법정에서 싸워 돈을 나눠 가지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발주처의 ‘직접지급 거부’, 법적으로 타당한가
이번 사건의 최대 쟁점은 발주처 기관이 A사의 직접지급 요청을 거부하고 공탁을 결정한 것이 정당한지 여부다. A사는 원청의 법정관리와 2회 이상 대금 미지급 등 하도급법상 직접지급 요건이 명백히 충족됐다고 주장한다.
반면 기관은 제3 채권자의 가압류가 먼저 있었고, 선금 지급 문제 등이 얽혀 있어 직접 지급 시 배임 등 또 다른 법적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고 맞선다.
변호사들의 의견은 대체로 ‘발주처의 의무 위반 소지가 크다’는 쪽으로 모였다. 법무법인 창세의 김정묵 변호사는 “하도급법 제14조는 발주자의 직접지급을 재량이 아닌 ‘의무’로 규정한다”며 “원청의 회생 개시는 명백한 직불 사유이며, ‘원도급사 확인’ 같은 이유는 정당한 거절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쉴드의 이진훈 변호사 역시 “직접지급 의무가 발생하면 해당 대금은 하도급업체에 귀속되므로, 나중에 들어온 가압류의 효력이 미치기 어렵다”며 “주위적으로 직불이행 청구, 예비적으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권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신중론도 있다. 법무법인 유안의 조선규 변호사는 “직불 요청 전에 은행의 채권 가압류가 먼저 집행됐다면, 발주처가 분쟁을 피하기 위해 공탁을 결정한 것을 위법으로 보기 어려울 수 있다”며 “이 경우 공탁금 배당 절차에서 채권의 우선순위를 다퉈야 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분석을 내놨다.
선금 떼이고 장비대까지…관리감독 소홀 책임은 없나
A사의 피해는 단순히 공사대금을 못 받은 데 그치지 않았다. 발주처 기관이 원청에 지급한 선금이 제대로 분배되는지 감독하지 않은 탓에 A사는 초반부터 자금난을 겪었다.
심지어 기관은 A사가 사용한 장비 대금을 A사의 동의나 정산 절차 없이 장비업체에 직접 지불해버렸다. 이는 하도급업체의 정당한 정산 권리를 침해한 행위다.
변호사들은 이 지점에서 발주처의 ‘관리감독 의무 위반’ 책임을 거론했다. 법률사무소 로앤이의 이유림 변호사는 “공공기관인 발주처는 일반 발주처보다 더 높은 수준의 관리감독 책임이 있다”며 “선금 사용 내역을 감독하지 않고, 하도급사의 동의 없이 장비 대금을 임의로 지급한 것은 명백한 의무 위반으로 손해배상 책임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