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원 던지고 형 줄었다? 성범죄자들의 ‘공탁 감형술’
500만 원 던지고 형 줄었다? 성범죄자들의 ‘공탁 감형술’
피해자의 눈물 닦아주기는커녕, 가해자 '면피 도구'로 전락하는 공탁금의 딜레마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최근 법원이 성범죄 사건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위해 형사공탁(공탁금)을 한 경우, 이를 양형에 반영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개정된 형사공탁 특례제도를 악용해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묻지마 공탁'을 하고 감형을 유도하는 사례가 여전히 나타나고 있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500만 원 '묻지마 공탁'에 형량 2개월 감경된 충격 사례
공탁금을 통한 처벌 수위 변화 사례는 피해자의 의사 표명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리는 경향을 보이나, 피해자가 명확히 거부했음에도 감형된 사례는 공탁금 제도의 맹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공중밀집장소추행 사건(2022년)에서 피고인이 500만 원의 공탁금을 내자, 법원은 원심 징역 8월을 징역 6월로 감경했다.
이는 피해자의 엄벌 탄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상당한 형사공탁이 이루어진 경우를 아무런 사정변경이 없는 경우와 같이 볼 수 없다"며 피고인의 공탁 노력을 인정한 결과다.
500만 원이라는 금액만으로 2개월의 실형이 감경된 이 사례는, 피해 회복 노력의 진정성보다는 공탁금 자체의 존재가 양형에 반영되는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와 달리, 1,50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공탁했던 준강제추행 사건(2023년)에서는 피해자가 완강히 합의를 거부하고 엄벌을 탄원하자, 법원은 원심의 징역 6월을 그대로 유지했다.
법원은 "피해자가 합의를 완강히 거부하며 엄벌을 탄원하는 상황에서 공탁만으로는 양형 변경 사유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해자 '선처 탄원'이 감형의 결정적 열쇠
2,000만 원 공탁 + 선처 탄원 → 실형에서 집행유예로 '극적 반전'
성범죄 사건에서 공탁금이 실질적인 감형으로 이어지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하며 선처를 탄원하는 경우다.
실제로 아동·청소년 강제추행 사건(2023년)에서 피고인이 2,000만 원을 형사공탁하고 피해자가 이를 수령할 예정이며 선처를 탄원하자, 법원은 원심의 징역 1년 6월 실형을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으로 파격적으로 변경했다. 이는 공탁금이라는 '금전적 피해 회복'에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라는 가장 강력한 양형 요소가 결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공탁금액에 따라 처벌 수위 변화가 달라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사이의 공탁은 형량의 소폭 감경 또는 유지에 그치는 반면, 1,500만 원에서 2,000만 원 사이의 공탁은 피해자의 합의 의사가 있는 경우 실형에서 집행유예로 변경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공탁금 수령 거부'에도 가해자가 돈을 회수하지 못하는 이유
피해자의 명시적 '동의' 없이는 국고 귀속
공탁금을 냈음에도 피해자가 이를 수령하지 않으면 그 돈은 가해자가 다시 회수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가해자가 임의로 공탁금을 회수하기는 매우 어렵다.
2024년 개정된 공탁법은 형사사건 피해자를 위한 공탁금에 대해 가해자(공탁자)의 회수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하지 않더라도 가해자는 원칙적으로 회수할 수 없으며, 가해자가 공탁금을 회수하려면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회수에 동의하거나, 해당 형사사건이 무죄판결로 확정되는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결국 공탁금을 수령하지 않고 가해자의 엄벌을 탄원하는 피해자가 늘어남에 따라, 공탁금은 장기간 공탁소에 보관되다가 10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국고에 귀속될 운명에 놓인다.
공탁금이 피해자에게 위안이 되지 못하고 양형 감경에도 실패할 경우, 가해자는 돈만 잃고 원하는 감형 효과도 얻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법원의 신중론: '일방적 공탁'의 한계를 명확히 하다
"돈으로 매수하는 행위로는 피해 회복에 준하는 결과 예상되지 않아"
법원은 성범죄에 대한 공탁금을 사기죄와 같은 일반 재산범죄와 달리 매우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다.
광주고등법원(전주)은 공탁을 두고 "피고인이 자신의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입게 된 정신적 고통을 비롯한 피해의 회복을 위한 진정한 사과를 포함한 구체적이고 진지한 노력을 하였다는 사정에 대한 뚜렷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는 상황에서, 위와 같은 일방적인 금전의 공탁 행위로는 피해 회복에 준하는 결과가 예상되지 아니한다"고 명확히 판시했다.
이는 단순히 공탁금을 납부하는 행위만으로는 양형 감경의 효과가 제한적이며, 공탁금액의 적정성, 피해자의 의사, 피고인의 진정한 반성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법원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다.
법원 실무는 공탁을 통한 '꼼수 감형' 시도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공탁이 진정한 피해 회복의 노력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피해자와의 진정성 있는 합의 시도와 충분한 금액의 공탁이 필수적이라는 결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