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꽁초 하나 버렸을 뿐인데"… 6천만 원 잿더미, '손해배상 청구서'의 향방은?
"담배꽁초 하나 버렸을 뿐인데"… 6천만 원 잿더미, '손해배상 청구서'의 향방은?
'실화책임법'과 배상 범위 분석
법원 "부주의 정도 따라 책임 50~80% 제한 가능성"

불에 그을린 주택 내부 /연합뉴스
17일 새벽, 전북 전주시의 한 다세대주택이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였다. 모두가 잠든 시각인 오전 1시 28분경 발생한 이 불은 입주민 A(40대) 씨에게 화상을 입히고, 건물 내부와 가재도구 등을 태워 소방서 추산 6천만 원 상당의 재산 피해를 낸 뒤 10여 분 만에 진화됐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화재의 원인을 A씨의 '담배꽁초 취급 부주의'로 지목했다. A씨가 자신의 집에서 담배를 피운 뒤 불씨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채 꽁초를 방치했고, 이것이 대형 화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본인 역시 화상을 입고 병원 치료를 받는 처지지만, 법적인 현실은 냉혹하다. 잿더미가 된 집과 이웃의 피해, 과연 A씨는 6천만 원이라는 거액의 피해를 전액 물어내야 할까. 법조계의 자문을 구해 이번 사건의 법적 쟁점과 배상 범위를 분석했다.
"부주의한 흡연은 불법행위"… 피할 수 없는 민사 책임
법적으로 A씨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우리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법원은 흡연자에게 매우 엄격한 주의의무를 부과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유사한 사건에서 "담배를 피운 후 불씨를 완전히 끔으로써 인근에 불이 번지지 않도록 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2022가단5048109). A씨의 경우, 담뱃불이 완전히 꺼졌는지 확인하지 않은 '부작위' 자체가 과실로 인정되어 불법행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따라 A씨는 건물 소유주에게는 훼손된 건물의 복구비용을, 피해를 본 이웃들에게는 가재도구 손해와 수리 기간 거주하지 못해 발생한 차임 상당의 손해까지 배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6천만 원 다 물어내야 하나?… '실화책임법'이 변수
하지만 A씨에게도 숨통을 트일 법적 장치는 존재한다. 바로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이하 실화책임법)'이다. 이 법은 화재가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아닌 '경과실'에 의한 것일 경우, 손해배상액을 경감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핵심은 A씨의 행위가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법원은 중과실을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결과를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만연히 간과한 상태'로 정의한다. 만약 A씨가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휙 던지고 나가는 등 현저한 주의 의무 위반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법원은 배상 책임을 일정 부분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
실화책임법 제3조 제2항에 따라 법원은 ▲화재의 원인과 규모 ▲피해의 확대 원인(건물 구조 등) ▲피해 확대를 막기 위한 실화자의 노력(신고 여부 등) ▲배상의무자의 경제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배상액을 깎아준다.
법원의 계산법, "상황 따라 50%에서 80% 책임 인정"
그렇다면 실제 법원은 담배꽁초 화재의 책임을 어느 정도로 제한할까. 판례를 살펴보면 그 범위는 대개 50~80% 선에서 결정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담배꽁초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옷가지를 태운 사건(2020나66178)에서 공평의 원칙을 들어 가해자의 책임을 전체 손해의 50%로 대폭 제한했다. 반면, 의정부지방법원은 담뱃불이 꺼졌다고 생각하고 버렸으나 화재가 발생한 사건(2023나212257)에서 가해자의 책임을 80%로 인정했다.
이는 A씨가 화재 발생 직후 119에 신고를 했는지, 혹은 초기 진화를 시도했는지 등의 '사후 조치'가 배상액 산정에 중요한 참작 사유가 됨을 시사한다.
"보증금에서 까요"… 임대차 계약과 보험 구상권의 덫
문제는 배상 절차다. A씨가 세입자라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임대인은 화재로 인한 손해배상 채권을 임대차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 즉, A씨는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더라도 돌려받을 보증금이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더 큰 산은 '보험사'다. 만약 집주인이 화재보험에 가입했다면, 보험사는 집주인에게 먼저 보험금을 지급한 뒤 A씨에게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상법 제682조). 개인 간의 합의가 아닌, 거대 보험사와의 법적 다툼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결국 A씨가 '배상 폭탄'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위가 중과실이 아님을 입증하고, 경제적 사정 등을 호소하여 법원으로부터 배상액 감경을 끌어내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