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서 믿었는데"…보이스피싱 전달책의 눈물
"합의서 믿었는데"…보이스피싱 전달책의 눈물
'민형사 책임없음' 한 줄의 함정, 재산명시 불응 시 '감치' 경고

보이스피싱 전달책이 '민형사상 책임없음' 합의 후 집행유예를 받았으나, 허술한 문구 탓에 민사소송에서 패소했다. / AI 생성 이미지
보이스피싱 전달책으로 가담해 집행유예를 받은 A씨.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합의서 한 장으로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허술한 문구는 민사 패소와 재산명시 명령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재산 없으니 괜찮겠지' 하며 안일하게 대처하다가는 구치소에 갇힐 수 있다는 법조계의 준엄한 경고가 나왔다.
"합의했는데 왜 또…" 허술한 합의서가 부른 날벼락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 전달책으로 범죄에 연루됐던 A씨. 구치소에서 8개월을 보낸 그는 피해자와 합의한 끝에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합의서에는 '민형사상적으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문구가 선명했다. 모든 악몽이 끝났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해자는 A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합의서 문구가 부실하다며 피해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억울한 마음에 주변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지만 "항소해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조언에 결국 항소를 포기했다.
판결에 따라 3개월간 돈을 갚던 그는 이내 변제를 중단했고, 몇 달 뒤 법원으로부터 '재산명시' 명령서가 날아왔다.
"재산 없으니 괜찮겠지?"…법조계 "감치될 수 있어"
A씨는 당장 내세울 재산이 없어 막막했다. "재산도 없는데 재산 명시를 굳이 해야 하나" 싶었지만,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은 단호했다. 재산명시 명령은 법원의 공식 절차이므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한강의 김전수 변호사는 "재산이 실제 없더라도 재산명시기일에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하거나 허위로 작성할 경우 별도의 불이익이나 제재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며 "따라서 “재산이 없으니 안 해도 된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법무법인 AK의 하동균 변호사 역시 "만약 특별한 이유 없이 법원에 나가지 않거나 재산 목록을 거짓으로 작성해서 낸다면, 경찰서나 구치소에 일정 기간 갇히게 되는 등 매우 무거운 제재를 받을 수 있어 질문자님께 크게 불리해집니다"라고 강조했다.
재산명시 절차에 불응할 경우 민사집행법에 따라 최대 20일간의 감치(구금)에 처해질 수 있다.
돈 갚으면 멈출까? 전문가들 "자동 중단은 없다"
A씨는 "혹시 피해자에게 돈을 다시 꾸준히 변제한다면 재산명시가 멈춰지는 건가요?"라며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변제를 재개한다고 해서 이미 진행 중인 법원의 절차가 자동으로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법률사무소 태희 민경남 변호사는 "다시 피해자에게 매월 꾸준히 변제한다고 해서 이미 개시된 재산명시 절차가 자동으로 멈추거나 취하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절차를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절차의 당사자인 상대방이 직접 법원에 취하서를 제출해야만 법적 효력이 발생합니다"라고 명확히 설명했다.
즉, A씨가 다시 돈을 갚기 시작하는 것만으로는 법원의 강제집행 절차를 멈출 수 없다는 의미다.
벼랑 끝의 유일한 동아줄, 피해자와의 '새로운 합의'
결국 A씨가 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은 피해자와 다시 마주 앉는 것이다. 법조인들은 하나같이 '피해자와의 소통과 협의'를 강조했다.
뉴로이어 법률사무소 국진호 변호사는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피해자 측과의 원활한 소통입니다"라며 "변제 계획을 다시 세우고, 피해자나 그 변호사와 협의하여 재산명시 절차를 중단할 수 있는지 논의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조언했다.
새로운 변제 계획을 제시해 합의를 이끌어내고,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재산명시 신청을 취하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하동균 변호사는 "과거 합의서를 작성할 때 문구 내용이 부족하여 지금과 같은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을 겪으신 만큼, 또다시 혼자서 조율하려다 예상치 못한 더 큰 불이익을 겪으실 수 있습니다"라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명확한 서류를 남길 것을 권했다.
재산명시 절차를 방치하면 결국 채무불이행자명부 등재, 통장 압류 등 더 큰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