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위해 이렇게까지 합니까" 질문에 태평양 건넌 친족 성폭력 피해자가 한 말
"뭘 위해 이렇게까지 합니까" 질문에 태평양 건넌 친족 성폭력 피해자가 한 말
'5분' 공판을 위해 10시간 넘게 미국과 한국 오가는 피해자
자신의 피해 입증하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돈 들여
"성폭력으로 잃어버린 내 몸의 결정권 되찾고 싶다"

사촌인 피고인으로부터 10년 넘게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 A씨는 5분을 위해 미국에서 한국까지 왔다. /연합뉴스·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서울고등법원 505호 법정은 재판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곳에서 재판부는 서둘러 공판을 이끌어가기에 바빴고, 찍어내듯 다음 기일을 잡았다. 그런데 지난 25일, 한 피해자가 재판부에 의견진술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다.
사촌인 피고인으로부터 10년 넘게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 A씨였다.
"지난 공판 때랑 비슷한 내용이라면, 결심공판 때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재판부가 난색을 보이며 완곡히 거절했지만, 피해자는 여러 차례 간청해 간신히 의견진술 기회를 얻었다. 어렵게 얻은 단 몇 분의 시간 동안 피해자가 전한 메시지는 하나였다.
"제가 평범한 일상을 내려놓고 이 힘든 법정다툼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피고인에게 빼앗긴 제 몸의 결정권을 되찾기 위해서입니다."
피해자가 진술하는 동안, 함께 재판장을 찾은 어머니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흐느꼈다. 다른 가족들도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피고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곤 재판이 끝나자마자 법정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재판이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법원 안에서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벌써 항소심 4번째 공판이었지만, 피해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피해자가 강제추행을 당해 정신적인 '상해'를 입었음을 입증하는 게 관건인 재판. 신체에 직접적으로 입은 상흔을 입증하는 것보다 더 큰 노력이 요구된다.
피해자를 대리하는 조우선 변호사(법무법인 윈스)는 "피해자와 미국에서 함께 생활하고, 병원 진료에 동행하기도 했던 지인들이 작성한 다수의 진술서를 제출했다"라면서 "정신적 상해를 증명할 의학적 소견을 모으는 데도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고인의 죄를 묻기 위해 열리는 재판이지만, 도리어 피해자가 더 많은 시간과 품을 들여 재판을 끌어가야 하는 기이한 상황이었다. 형사재판 외에도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민사소송도 준비하고 있다는 A씨. 하지만 손해를 돌려받으려 거는 재판에 피해자가 들여야 하는 금전적 수고가 더 크다고 했다.
조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대략 50만원 선인 신체 진료 감정보다 정신 진료 감정은 그 4배가량 더 큰 비용이 소요된다고 했다. 눈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해를 밝히려면 수일간 입원을 해야 하기 때문. 이 비용은 오롯이 피해자가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도 피해자 A씨는 소송 과정에서 숱한 2차 가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잘 살다가 왜 갑자기 한국에 와서 이런 싸움을 하느냐"는 식이었다. 심지어는 피고인 변호인 측으로부터 "(피해자가) 정신장애가 있는 것 같다"며 진술 신빙성을 의심받았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어떤 이익만을 바랐다면, 긴 싸움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피고인이 죗값을 치러야만, 제가 틀리지 않았다는걸 밝힐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공판에는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도 방청 연대에 나섰다. 해당 관계자는 "로톡뉴스를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해 접하게 됐다"면서 "친족 성폭력 범죄 근절을 위해, 피해자 탄원서 연명과 활동가 의견서 제출 등을 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27일, 광화문에선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이 공동주최한 이날 행사에선 "많은 친족 성폭력 사건에서 가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외면하는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은 "공소시효를 폐지해 언제든 생존자가 나서기만 한다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이 사건 공판은 오는 1월 27일, 서울고법 505호에서 다시 열린다.
이 기사는 로톡뉴스의 윤리강령에 부합하는 사실 확인을 거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