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뱅킹 열어! 캄보디아발 비명…'현대판 노예'는 왜 보이스피싱 '공범'으로 몰렸나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폰뱅킹 열어! 캄보디아발 비명…'현대판 노예'는 왜 보이스피싱 '공범'으로 몰렸나

2025. 10. 18 14:23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나는 피해자다" 외쳤지만…

경찰은 왜 그를 '피의자'로 의심하나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캄보디아에서 2주간 감금과 폭행,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A씨.


하지만 그가 한국에 돌아와 마주한 것은 위로가 아닌 '피의자'라는 차가운 낙인이었다. 대출 사기 조직의 '피해자'인 그가 어쩌다 자신의 통장을 범죄에 내어준 보이스피싱 '공범'으로 몰리게 된 것일까.


"대출 해주겠다"던 약속, 공항 도착 순간 지옥으로

낮은 신용으로 대출이 절박했던 A씨에게 "캄보디아로 오면 대출을 해주겠다"는 업자의 제안은 마지막 동아줄과 같았다. 희망을 품고 비행기에 올랐지만, 캄보디아 공항에 내린 순간 모든 것이 악몽으로 돌변했다. 조직원들은 A씨를 낯선 숙소로 끌고 가자마자 여권과 휴대폰을 빼앗고 외부와의 모든 연락을 차단했다.


"2~3주만 있으면 된다"던 말은 감금을 위한 거짓말이었다.


조직원들은 "폰뱅킹 정보를 넘기라"고 협박했고, A씨가 저항하자 무자비한 폭행이 쏟아졌다. 공포에 질려 결국 계좌 정보를 넘겨주자, 그의 통장은 곧바로 보이스피싱 범죄의 자금 세탁 통로로 전락했다. 조직은 한술 더 떠 숙식비를 빚으로 둔갑시키고는 "빚을 갚을 때까지 청소와 배식 일을 하라"며 강제노역까지 시켰다. 지옥 같던 어느 날, 보다 못한 한 한국인 관리자의 도움으로 그는 기적처럼 현장을 탈출할 수 있었다.


'피해자'와 '공범' 사이, 법의 심판대에 서다

귀국 후에도 A씨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통장이 범죄에 사용된 탓에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나 사기방조죄의 '공범'으로 처벌받을 위기에 놓인 것이다. A씨의 운명을 가를 핵심 쟁점은 그의 행위가 '자발적 대여'였는지, 아니면 폭력에 의한 '강요된 행위'였는지를 가려내는 것이다.


법무법인 쉴드의 이진훈 변호사는 "폭행·협박으로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한 행위는 형법 제12조의 '강요된 행위'에 해당해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A씨가 겪은 폭력과 감금이 바로 이 '강요'의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법무법인 공명의 김준성 변호사 역시 "애초에 범죄에 가담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으므로 '범죄의 고의'가 없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즉, 속아서 캄보디아에 갔고, 폭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통장 정보를 넘겼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공범'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단순 통장 대여 아닌 '국외 인신매매' 중범죄

법조계는 이 사건을 단순 금융 범죄가 아닌 '국외 인신매매'라는 중범죄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대출을 미끼로 사람을 해외로 유인해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고 노동력을 착취한 행위는 명백한 인신매매 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는 "이는 단순한 통장 대여가 아니라 폭행과 협박을 동반한 인신구속 사건"이라며 "A씨를 피의자가 아닌 명백한 피해자로 보고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률사무소 유(唯)의 박성현 변호사도 "사실상 국외 인신감금 및 강요, 사기 조직에 의한 협박·폭행 피해자로 판단된다"며 A씨가 범죄 시스템의 최하위 가담자가 아닌, 구조적 범죄의 피해자임을 분명히 했다.


살아남으려면? "'피해자' 입증할 증거부터 찾아라"

그렇다면 A씨는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내야 할까? 전문가들은 '객관적 증거'와 '일관된 진술'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특히 경찰서에 가는 것보다 변호사를 먼저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JY법률사무소 이재용 변호사는 "경찰 조사를 받기 전 반드시 형사전문 변호사와 상담해 피의자가 아닌 피해자 신분으로 진술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항공권, 출입국 기록, 폭행 흔적이 담긴 사진이나 진단서, 조직원과 나눈 대화 등은 강요 사실을 입증할 결정적 무기가 된다.


다만, 오엔 법률사무소 백서준 변호사는 "폭행, 협박, 감금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면 공범으로 의심받기 쉽다"며 "'통장을 빌려주러 캄보디아까지 갔다'는 진술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게 보일 수 있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짚었다.


결국 A씨는 폭력 조직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금융 범죄의 잠재적 피의자라는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서, 자신의 무고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시작하게 됐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