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성폭행 덫' 놓고 3억 뜯어낸 18명, 16명은 왜 집행유예로 풀려났나
친구에게 '성폭행 덫' 놓고 3억 뜯어낸 18명, 16명은 왜 집행유예로 풀려났나
계획·지시한 2명은 '실형', 단순 가담 16명엔 '사회 복귀 기회'

생성형 AI로 만든 본문과 무관한 이미지
지인 23명에게 '성폭행'을 빌미로 3억을 뜯어낸 일당 18명 중 16명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범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대부분이 실형을 피한 판결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온다.
청주지방법원은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공갈 혐의로 기소된 A씨 등 2명에게는 각각 징역 1년과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범행에 가담한 나머지 16명에게는 모두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A씨 일당은 2022년 2월부터 1년 6개월간 동네 선후배나 친구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즉석만남을 가장해 술자리를 만든 뒤, 미리 섭외한 여성이 피해자와 잠자리를 갖도록 유도했다. 그 직후 "여성이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한다"며 "신고하지 않도록 도와줄 테니 합의금을 달라"고 협박하는 수법이었다. 이들에게 속아 넘어간 피해자만 23명, 뜯어낸 돈은 3억에 달했다.
재판부 역시 "지인을 대상으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범행을 저질러 죄질이 나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왜 법원은 16명에게 사회로 돌아갈 기회를 줬을까?
법원, 3가지 기준으로 형량 갈랐다
이번 판결은 법원의 전형적인 양형 기준 3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① 가담 정도의 차이
재판부는 판결 이유에서 "가담 정도와 범죄 전력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명시했다. 이는 범행을 총괄 기획한 주범과 단순히 지시에 따른 공범의 책임을 다르게 봤다는 의미다.
A씨 등 실형을 선고받은 2명은 범행의 밑그림을 그리고 수익을 분배하는 등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반면 집행유예를 받은 16명은 피해자 유인책, 보호자 사칭, 성관계 여성 역할 등 각자 맡은 역할만 수행하며 상대적으로 낮은 가담 정도를 보였다.
②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
공갈죄는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없어도 처벌할 수 있지만, 피해자와의 합의는 양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부 피고인들이 피해자들에게 뜯어낸 돈을 돌려주고 합의했을 가능성이 크다.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보인 점을 재판부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③ 범죄 전력
형법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는 경우 집행유예 선고를 제한한다. 집행유예를 받은 16명은 초범이거나 벌금형 등 경미한 전과만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법원은 재범의 위험이 낮다고 판단될 때 사회에 복귀할 기회를 주는 집행유예를 선택하곤 한다.
비슷한 사건에서도 '주범 실형·공범 집행유예'는 일반적
이와 같은 '꽃뱀 공갈' 사건에서 주범에게는 실형을, 단순 가담자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법원은 공동으로 범행했더라도 개개인의 역할과 책임을 면밀히 따져 형량을 달리 정한다.
집행유예 제도의 본질은 비교적 경미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가담 정도가 낮은 초범에게 사회 내에서 스스로 개선할 기회를 주는 데 있다. 이번 사건 역시 주범 2명에게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 실형을 선고하되, 상대적으로 책임이 가벼운 공범들에게는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관용을 베푼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판결은 법리적으로는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친구와 선후배에게 배신당하며 겪었을 정신적 고통과 3억이라는 피해 규모를 고려할 때, 국민의 법감정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