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원장 믿었는데…얼굴에 생긴 500원 크기 얼룩, 병원은 '네 탓'
대표원장 믿었는데…얼굴에 생긴 500원 크기 얼룩, 병원은 '네 탓'
법조계 "시술 강도 조절 실패·설명 의무 위반 명백…치료비·위자료 청구 가능"

레이저 제모시술을 받았는데 커다란 색소침착이 발생한 A씨. 그런데 병원측은 과실을 인정하지 않아 A씨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믿었던 대표원장의 레이저 시술, 얼굴에 '500원짜리 흉터' 남기고 병원은 발뺌…법적 책임은?
“더 이상 무료 치료는 힘듭니다.” 병원의 한마디에 A씨의 세상이 무너졌다. 평택의 한 의원에서 레이저 제모 시술을 받은 그의 왼쪽 얼굴에는 500원 동전보다 큰, 지워지지 않는 반달 모양의 얼룩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믿었던 대표원장의 시술이 남긴 끔찍한 흉터였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A씨는 해당 의원에서 여성 의사에게 1, 2회차 제모 시술을 받았을 때만 해도 아무런 부작용 없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A씨의 악몽은 3회차 시술에서 시작됐다. 시술을 맡은 남자 대표원장은 “털이 굵으니 강도를 올려야 한다”며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술을 강행했다. 그날 이후, A씨의 왼쪽 뺨에는 거울을 볼 때마다 한숨짓게 하는 거무스름한 흔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에 병원에 문의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기다려보라”는 말뿐이었다. 색소는 점점 더 짙어졌다. 4회차 방문 때 병원은 문제를 인식한 듯 색소침착 치료를 무료로 진행하며 “내가 대표원장이니 걱정 말라”고 A씨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다. 5회차 방문 때, 병원은 돌연 “레이저 제모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라며 말을 바꿨고, 이후 치료는 사비로 진행하라고 통보했다.
동의서엔 '화상'뿐…'색소침착' 경고는 없었다?
A씨가 뒤늦게 확인한 시술 동의서에는 ‘화상’ 위험에 대한 안내만 있을 뿐, ‘색소침착’에 대한 경고는 단 한 줄도 없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지점을 병원의 가장 큰 책임으로 꼽는다.
법무법인 휘명 김민경 변호사는 “미용 목적의 시술은 부작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동의서에 색소침착 설명이 없었다면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세담 한정미 변호사 역시 “법원은 미용 시술에 높은 설명의무를 부과한다”며 “시술 동의서에 부작용인 색소침착이 기재되지 않았다면 설명의무 위반이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의료법 제24조의2는 의료인이 환자에게 수술 등 의료행위의 내용, 후유증 또는 부작용을 설명하고 서면 동의를 받도록 규정한다. 환자가 부작용 위험을 인지하고 시술 여부를 선택할 권리를 병원이 침해했다는 의미다.
의사마다 다른 결과…'강도 조절 실패' 과실일까?
법조계는 특정 의사에게 시술 받은 뒤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전 시술과 달리 대표원장이 임의로 강도를 높인 행위가 ‘의료상 과실’에 해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법무법인 심의 심준섭 변호사는 “레이저 강도를 임의로 높여 시술한 것은 의료상 과실로 볼 수 있다”며 “동일 시술에서 다른 의사의 시술 시에는 부작용이 없었다는 점이 과실 입증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시술 후 색소 침착이 발생했음에도 적절한 후속 조치 없이 방치하거나, 오히려 피부에 자극이 될 수 있는 제모 시술을 이어간 점도 ‘경과 관찰 소홀’이라는 또 다른 과실로 지적된다. 환자가 의료진의 과실을 직접 증명하기 어려운 의료 소송의 특성 상, A씨처럼 시술 전후 상태가 명확하고 다른 원인이 개입될 여지가 적다면 병원 측이 과실이 없었음을 반대로 증명해야 할 책임이 커진다.
얼굴 흉터, 얼마까지 배상 받을 수 있나
그렇다면 A씨는 어느 정도의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법률사무소 율선 홍경열 변호사는 “얼굴에 생긴 500원 동전보다 큰 색소 침착은 ‘추상 장해(외모에 남은 흉터)’로, 일종의 장해와 같이 손해배상을 산정할 수 있는 피해”라고 말했다. 손해배상 범위에는 이미 지출한 치료비와 앞으로 발생할 향후 치료비, 교통비는 물론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가 포함된다.
김민경 변호사는 “얼굴 부위 흉터는 위자료가 더 크게 산정되는 경향이 있으며, 수 백만 원 단위에서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과거 유사 판례(서울서부지방법원 2022나51229)에서 법원은 레이저 시술 후 색소 침착이 생긴 환자에게 병원이 향후 치료비와 위자료 등 약 84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소송에 앞서 진료기록부, 시술 전후 사진, 다른 피부과 전문의의 진단서, 병원과 나눈 대화 기록 등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소송이 부담스럽다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한 조정 신청을 먼저 고려해볼 수도 있다. 한때 ‘걱정 말라’던 의사의 말은, 이제 법정에서 책임을 묻는 핵심 근거가 되어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