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오염 보상 안 해주려면 '무해하다'는 것 도로공사가 직접 증명해라"
대법원 "오염 보상 안 해주려면 '무해하다'는 것 도로공사가 직접 증명해라"
영동고속도로 인근의 한 과수원⋯도로와 인접한 나무들 말라 죽어
과수원 "매연과 제설제가 원인" vs 한국도로공사 "인정할 수 없다"
대법원이 손해배상 증명 책임을 도로 공사에 지운 배경

강원 산간에 눈이 내린 25일 양양과 인제를 잇는 한계령 정상에서 제설 차량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 행위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피해 증명'은 본인이 해야 한다. 인과관계를 증명할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가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예외적인 판결이 나왔다. 대기오염이나 수질오염 등의 공해로 입은 피해는 가해자가 "무해하다"는 걸 입증하라고 한 것이다. 대법원은 어떤 이유에서 이러한 판결을 내렸을까?
나무들이 자꾸 말라 죽는 과수원
영동고속도로 인접 지역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는 A씨는 이상한 현상을 겪었다. 자꾸 과수원 외곽의 나무들이 말라 죽는 것이었다. 열매의 크기도 다른 나무들과는 현저히 작았다. A씨는 이 원인이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매연과 겨울에 사용하는 제설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공해(公害·산업이나 교통 발달에 따라 사람이나 생물이 입게 되는 여러 가지 피해) 때문에 과수원에 피해를 입었다며 2011년 7월 중앙환경분쟁위원회에 손해배상을 구하는 재정신청을 했다.
과수원이 접한 도로 구간의 하루 평균 차량 통행량은 6만여대, 눈 올 때 제설제로 사용하는 염화칼슘은 한해 1톤가량에 달했다. 이를 바탕으로 위원회는 A씨의 피해를 인정해 한국도로공사에 대해 880만 원을 보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도로공사는 위원회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과수원 피해에 대한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도로공사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1심과 2심은 과수원 주인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과일나무 고사와 수확량 감소를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자동차 매연과 제설제 비산에 의한 것으로 보고, 한국도로공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한국도로공사는 이번엔 대법원에 판단을 구했다. 2심의 판단에 △불법행위 성립 요건으로서 위법성과 △공해소송 증명책임의 완화 등에 관한 법리에 오해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제2부(재판장 안철상 대법관)는 지난달 28일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인접 과수원의 주인 A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상고심에서, “한국도로공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1심과 2심의 판단에 법리 오해가 없었다”며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①불법행위 성립요건으로서의 위법성
대법원은 "어느 시설을 적법하게 가동한 경우에도 그로부터 발생하는 유해 배출물로 제3자가 손해를 입었다면 그 위법성을 별도로 판단하여야 한다"며 "이 경우 판단기준은 그 유해의 정도가 사회 통념상 일반적으로 참아내야 할 정도를 넘는 것인지 여부"라고 했다.
대법원은 과수원 주인 A씨가 입은 피해가 "통상의 참을 한도를 넘는 것"으로 보며 위법성을 인정했다.
②"유해 물질 배출자가 '무해' 입증 못 하면, 손해배상책임 있다"
또한 대법원은 어떤 유해 물질을 배출해 피해를 발생시킨 것으로 지목된 가해자 측에서 ‘해를 입히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피해자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피해자에게 입증할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법원은 "대기오염이나 수질오염 등 공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에서 피해자에게 인과관계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엄밀히 증명토록 요구하는 것은 공해로 인한 사법적 구제를 사실상 거부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기술적·경제적으로 가해자에 의한 원인조사가 훨씬 용이할 뿐 아니라, 가해자는 손해 발생의 원인을 은폐할 염려가 있다"며 "따라서 어떤 유해 원인 물질을 배출한 가해자가 '그것이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가해행위와 피해자의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