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임차인 없으면 보증금 못 준다"는 집주인, 이사 안 가도 지연이자 받을 수 있을까?
"새 임차인 없으면 보증금 못 준다"는 집주인, 이사 안 가도 지연이자 받을 수 있을까?
보증금 반환 소송, 1·2심 '동시이행' 원칙에 막혀…최신 대법원 판례가 변수 될까

임대차 계약 종료 후 보증금을 못 받은 세입자가 이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연손해금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하지만 임대인이 반환 거절 의사를 명백히 한 경우 예외를 인정한 최신 대법원 판례가 나와, 상고심에서 다퉈볼 여지가 생겼다. / AI 생성 이미지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 보증금을 줄 수 있다." 임대차 계약이 끝났지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집주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 부닥친 세입자 A씨는 결국 소송을 걸었지만, 법원에서 지연손해금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아직 집을 비우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A씨는 억울하다. 집주인이 돈을 줄 수 없다고 명백히 밝혔는데도, 이사를 나가야만 지연이자를 받을 수 있는 걸까?
최근 나온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상고심을 준비하는 A씨의 사연을 변호사들과 함께 들여다봤다.
"이사 나가야 보증금 준다"…'동시이행' 원칙에 막힌 지연손해금
일반적으로 임대차 계약이 끝나면 임차인의 '주택 인도의무'와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의무'는 동시에 이행돼야 하는 관계(동시이행관계)로 본다. 법원은 이 원칙에 따라, 임차인이 주택을 비워주지 않거나 비워줄 준비가 됐다는 사실(이행제공)을 알리지 않았다면, 임대인 역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이행지체'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고 본다.
이행지체가 아니므로, 보증금 반환이 늦어져도 그에 따른 지연손해금(지연이자)은 발생하지 않는다. A씨가 1·2심에서 지연손해금 청구를 기각당한 것도 이 때문이다.
"돈 없다" 명백히 밝힌 집주인…'최신 판례'는 예외 인정
하지만 A씨는 집주인이 '새 임차인이 없으면, 보증금을 줄 수 없다'는 뜻을 명확히 한 만큼,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변호사들은 이런 경우라면 다퉈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봤다.
최근 나온 대법원 판례(2025. 5. 15. 선고 2024다321973 판결)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판례는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할 수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 임차인이 굳이 집을 비우는 등 무용한 이행제공을 하지 않아도 임대인에게 이행지체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봤다.
법무법인 쉴드 이진훈 변호사는 "원심이 이 최신 판례의 예외 법리를 적용할지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면, 이는 '판단유탈'이나 '법리오해'에 해당해 상고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로변호사 홍윤석 변호사 역시 "임대인이 미리 보증금 반환 불능을 명백히 한 경우 임차인의 이행제공 의무를 면제하는 대법원 판례 법리를 원심이 오해했다는 점은 타당한 상고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임대인의 명시적인 거절 의사가 담긴 객관적 증거를 강조하면, 지연손해금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직 거주 중이라면 얘기 달라져"…신중론도 만만찮아
반면, 상고심에서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이 낮다는 신중론도 제기됐다. 특히 임차인이 여전히 해당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로버스 법률사무소 신은정 변호사는 "최신 판례는 임차인이 계속 거주하면서 지연손해금까지 청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신 변호사는 "임차인이 거주하며 목적물을 사용하는 동안에는 공평의 원칙상 임대인에게 지연손해금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 확고한 판례의 태도"라며 "원심 판단이 적법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새로 따지지 않는 법률심이라는 점도 한계로 꼽혔다.
로원파트너스 유승윤 변호사는 "원심이 임대인의 발언을 명백한 반환거절이 아닌 단순한 자금 사정 호소로 사실인정했다면, 법리 오해만으로 판결을 뒤집기는 쉽지 않다"고 짚었다.
상고심 핵심은 '법리 오해' 입증…증거·기한 준수 중요
결국 변호사들은 상고심에서 이기려면 원심 판결이 사실관계를 잘못 판단했다는 주장이 아니라, 최신 법리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다는 '법리 오해'나 '판단 누락'을 입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새올법률사무소 강원모 변호사는 "임대인의 명백한 반환거절·반환불능이 입증되는 것이 예외 주장의 핵심"이라며 "문자·통화기록 확보, 명도 준비 완료 통지 등이 승부처가 된다"고 강조했다.
더신사 법무법인 김연주 변호사는 "상고이유는 원심이 법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했다는 점과 판단 누락이 있었다는 점을 전면에 두는 구성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진훈 변호사는 "상고이유서 제출 기한이 엄격하게 적용되므로 기한 준수 여부를 즉시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