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25)] 가해자 아닌 이가 배상책임 지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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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25)] 가해자 아닌 이가 배상책임 지는 경우

2021. 09. 10 15:49 작성
호문혁 교수의 썸네일 이미지
homoo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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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자, 사용자, 도급인, 공작물 점유자, 동물 점유자 등

남에게 해를 끼친 불법행위를 한 사람이 배상책임을 져야지, 아무 관계도 없는 다른 사람이 배상책임을 져서는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원칙을 엄격히 지키면 피해자가 제대로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때는 불법행위에 간접적이라도 책임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우선 배상하도록 한다. /셔터스톡

범죄자 아닌 엉뚱한 사람이 형벌을 받다가 나중에 진범이 잡혀 뉴스가 되는 사건을 가끔 본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임은 물론이다. 민사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남에게 해를 끼친 불법행위를 한 사람이 배상책임을 져야지, 아무 관계도 없는 다른 사람이 배상책임을 져서는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원칙을 엄격히 지키면 피해자가 제대로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어린 나이나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 때문에 가해자에게 배상책임을 지울 수가 없거나 가해자가 경제력 부족으로 배상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이때에는 불법행위에 간접적이라도 책임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우선 배상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우로 감독자의 책임을 들 수 있다. 7살 된 어린아이 김후달이 불장난을 하다가 허생원 집에 화재를 일으켰거나, 치매 걸린 노인 이추엽이 허생원의 물건을 부쉈으면 이들은 자기 행위의 책임을 인식할 지능(책임능력)이 없기 때문에 배상책임을 지울 수가 없다. 이때에는 책임무능력자를 감독할 법적 의무가 있는 이가 배상책임을 진다. 미성년자 김후달의 친권자 김선달이나 이추엽의 성년후견인인 아들 이춘풍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만 이들 감독자가 감독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책임을 면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사용자의 책임이 있다. 김선달이 후배 김후달을 고용해서 사무를 보게 하였는데, 피용자(被傭者) 김후달이 일 처리를 잘못하여 허생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는 김후달은 물론이고 사용자 김선달도 배상책임을 진다. 김선달이 배상했다고 해서 김후달의 책임이 아주 면제되는 것은 아니어서, 김선달은 배상한 금액을 갚으라고 김후달에게 청구할 수 있다(구상권 행사). 다만, 김선달이 김후달을 선임하고 사무감독을 하면서 상당한 주의를 하였으면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


수급인이 일을 하다가 남에게 손해를 끼쳐도 도급인은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수급인은 '일을 완성할' 의무가 있고, 도급인은 수급인이 일을 완성하면 보수를 지급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도급인 김선달이 수급인 김후달에게 일을 시키는 데에 녹이 슬어 못쓰게 된 자재를 공급하는 등 중대한 과실이 있어서 김후달이 허생원에게 손해를 끼쳤으면 김선달은 배상책임을 진다.


김선달이 공원에 설치하고, 이를 이춘풍에게 임대하여 운영하는 청룡열차가 고장이 나서 이용객 허생원이 상해를 입은 경우는 어떨까. 이러한 공작물의 설치나 보존에 흠이 있어서 남에게 손해를 가하였으면 그 청룡열차의 점유자 이춘풍이 배상책임을 진다. 그러나 이춘풍이 손해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소유자 김선달이 배상책임을 진다. 사고의 원인이 청룡열차를 만들 때 김후달이 낡은 중고 자재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면, 허생원의 손해를 배상한 이춘풍이나 김선달은 김후달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동물의 점유자도 그 동물이 남에게 손해를 입히면 배상책임이 있다. 이춘풍이 정원에서 키우는 아기공룡 둘리가 옆집으로 넘어가 허생원이 키우는 닭을 잡아먹었으면 이춘풍이 배상을 해야 한다. 여행을 떠난 이춘풍의 부탁으로 김선달이 둘리를 돌보고 있을 때 둘리가 사고를 쳤으면 김선달이 배상책임을 진다. 다만 이춘풍이나 김선달이 둘리를 돌보는 데에 상당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처럼 가해행위를 하지 않은 김선달이나 이춘풍은 자기가 할 주의를 다 했으면 배상책임이 없다. 주의를 다 했는지가 다투어지면 주의를 다 했다는 점을 김선달이나 이춘풍이 증명을 해야 한다. 주의를 게을리 하였음을 허생원이 증명할 일이 아니다. 이 점에서 직접 가해자가 배상책임을 지는 일반적인 불법행위에서 가해행위의 존재, 고의나 과실, 손해 발생, 인과관계 등을 피해자가 모두 증명을 해야 하는 것과 다르다.


김선달이나 이춘풍처럼 남을 감독하거나, 일을 시키거나, 공작물, 동물을 관리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허생원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 주의를 게을리 하고서 내가 한 일 아니라고 오리발을 흔들어도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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