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소 문턱에 가로막힌 휠체어 유권자들⋯선관위 답변 "들어서 옮겨드릴게요"
투표소 문턱에 가로막힌 휠체어 유권자들⋯선관위 답변 "들어서 옮겨드릴게요"
제주 투표소 37곳, 휠체어 접근 '부적합' 판정
대선 때 지적받고도 그대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제주도의회에 마련된 연동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방선거를 닷새 앞두고 사전투표가 시작됐지만, 제주 지역 투표소 절반 이상이 휠체어 이용자를 비롯한 이동 약자의 접근을 사실상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승민 작가는 2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투표소 접근성 실태를 고발했다. 조사 기준은 주출입구 접근 가능 여부, 경사로 설치 여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 폭 등 크게 세 가지였다.
올해도 투표소 절반 가까이가 이용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으며, 세 항목 모두 부적합 판정을 받은 곳만 37곳에 달했다.
특히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부적합 판정을 받았던 35개 투표소가 이번 선거에서도 똑같이 선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1층 건물이라 안심? 폭 좁고 턱 높은 장벽 여전해
부적합 판정을 받은 35곳은 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소 선정 1순위 기준에 따라 모두 건물 1층에 위치해 있었다.
경로당이 가장 많았고 복지회관, 주민센터, 체육관, 학교 시설 등 겉보기엔 접근성이 좋아 보이는 건물들이었다.
하지만 면 지역이나 구시가지의 노후 건물인 탓에 좁은 철제 미닫이문이 달려있거나, 경사로가 없고 출입구 폭이 좁으며 단차가 높다는 공통점이 발견됐다.
직접 모니터링을 다녀온 휠체어 이용자 김도경 씨는 대선 당시 부적합 판정을 받았던 한 공공도서관에 다시 방문했다.
김도경 씨는 휠체어 이용자가 투표하러 올 때 턱에 무언가를 깔아주느냐고 문의했으나, "저희는 그런 거 안 깐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도서관 측은 옛날 건물이라 턱이 있는 것이며 기존에도 이렇게 투표를 진행했다고 답했다. 평소에도 휠체어 이용자는 아예 진입이 불가능한 셈이다.
온라인 정보 제공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포털사이트 지도 앱에는 승강기, 점자 유도 블록, 장애인 화장실 유무 정도만 나와 있었다.
사전에 전화로 경사로가 있다는 안내를 받더라도, 계단 6개 높이에 경사로 길이는 1m에 불과해 전동 휠체어로는 오르기 가파른 경우도 있었다. 임시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어도 출입문 유효 폭이 좁아 진입조차 불가능한 곳도 존재했다.
결국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투표가 가능한 장소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김도경 씨는 방송 인터뷰에서 "본 투표를 하기 위해서 제가 미리 가봐야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막상 당일에 갔는데 안 되면 사전 투표는 이미 지났고, (결국) 사전 투표를 강제당하는 거라 애초에 선택권이 없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당사자 현실 뺀 선관위의 '반쪽짜리' 대책
이러한 지적에 대한 선관위 측의 답변은 당사자들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소 출입과 관련해 "대부분 출입은 다 가능하고, 자력으로 틀거나 하는 부분이 안 될 수 있는데 들어서 좀 옮겨 주거나 틀어 주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답했다.
선관위가 말하는 출입 가능 기준은 손으로 직접 바퀴를 미는 수동 휠체어였으며, 전동 휠체어 진입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사실상 사전투표를 이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유승민 작가는 보도블록 상태나 턱, 경사 등 국내 보도 환경상 이동 약자가 외부에서 수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고 지적했다.
당사자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수동 휠체어를 기준으로만 접근 가능성을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승민 작가는 지난 4월 제주 선관위가 이동 약자 단체들과 실시한 공동 점검 당시 내놓은 대안이 '임시 경사로 설치와 인력 배치'였다고 꼬집었다.
유 작가는 "인력 배치라는 것이 들어서 옮겨 주거나 방향을 틀어주겠다는 말"이라며 "여전히 장애인 유권자를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휠체어가 넘지 못하는 문턱이나 출입문 폭은 불과 몇 센티미터의 차이임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가 그 몇 센티의 장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