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에 찍힌 ‘우선 청구’, 끝나지 않는 소송의 서막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소장에 찍힌 ‘우선 청구’, 끝나지 않는 소송의 서막

2026. 05. 21 17:33 작성
최회봉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caleb.c@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맞소송이냐 방어냐… 녹취 없는 ‘협박’은 독배일까

손해배상 소송의 '우선 청구'는 추가 소송 가능성을 의미해, 피고는 분쟁을 끝낼 '맞소송'과 비용을 아끼는 방어 집중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AI 생성 이미지

손해배상 소장에 박힌 ‘우선 청구’라는 네 글자. 이번 재판에서 이겨도 언젠가 더 큰 금액의 추가 소송이 날아들 수 있다는 공포의 예고장이다.


이 분쟁의 불씨를 완전히 꺼버리기 위해 ‘맞소송(반소)’이라는 칼을 뽑아야 할까? 아니면 일단 방패 뒤에 몸을 숨겨야 할까?


녹음 파일조차 없는 상대방의 “겁줄까?”라는 발언은 법정에서 승기를 잡을 무기가 될까, 오히려 나의 신뢰도만 깎아먹는 자충수가 될까. 피고의 깊은 딜레마를 두고 법률 전문가들의 해법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끝나지 않는 소송의 덫, ‘명시적 일부청구’


소송 서류에 ‘우선 청구’, ‘일응 청구’ 같은 표현이 있다면 피고는 바짝 긴장해야 한다. 이는 원고가 “이번에는 손해액의 일부만 청구하지만, 나머지에 대한 권리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밝히는 ‘명시적 일부청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우리 법원은 이런 경우, 판결의 효력(기판력)이 현재 청구된 금액에만 미친다고 본다. 즉, 피고가 이번 소송에서 이기거나 지더라도 원고는 언제든 남은 손해액에 대해 또 다른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피고 입장에서는 한 번의 재판으로 분쟁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없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법적 불안 상태에 놓이는 셈이다.


‘맞소송’ vs ‘일단 방어’, 변호사들의 전략 대격돌


이 ‘추가 소송’의 공포를 선제적으로 차단할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채무부존재확인 반소’다. “원고에게 더 이상 갚을 빚이 없음을 법원이 확인해 달라”며 피고가 원고를 상대로 역으로 소송을 거는 것이다. 이를 통해 승소하면 분쟁의 뿌리를 뽑을 수 있다.


민경남 변호사는 “수동적인 방어에만 머무르는 것은 향후 이어질 수 있는 추가 청구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반소를 통해 분쟁의 불씨를 소멸시키고 정황 증거를 적절히 활용해 재판부를 설득하는 전략이 요구됩니다”라며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하지만 섣부른 반격은 금물이라는 신중론도 팽팽하다. 신현범 변호사는 “미리 인지대 등 비용을 쓰면서 채무부존재확인 반소를 제기할 필요는 없습니다”라며, “원고가 추후 추가 청구를 하면 그때 그 부분을 방어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불필요한 소송 비용과 시간만 낭비할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에서다. 길기범 변호사 역시 “지금 당장 반소를 제기하실 필요는 없으며, 준비서면을 통한 방어에 집중하시는 것이 유리합니다”라고 거들었다.


반소 제기, 준비서면에 쓰면 끝? “별도 반소장 필수”


만약 맞소송을 결심했다면 절차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자신의 주장을 정리해 법원에 내는 ‘준비서면’에 반소 의사를 몇 줄 적는 것만으로는 아무 효력이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변호사들 모두 한 목소리를 냈다. 이숭완 변호사는 “반소는 준비서면이 아닌 별도 반소장 서면으로 제기해야 하며, 준비서면에 반소 취지를 기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이푸름 변호사 또한 “반소는 준비서면이 아니라 별도 반소장 제출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라고 확인했다.


반소는 방어의 일부가 아닌, 본소와는 별개의 새로운 소송을 제기하는 행위이므로 반드시 ‘반소장’이라는 독립된 서류를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기는 변론이 끝나기 전까지 가능하지만, 쟁점을 초기에 정리하기 위해 가급적 빨리 진행하는 편이 안전하다.


녹취 없는 “겁줄까?” 발언, 법정에서 통할까


피고의 또 다른 골칫거리는 원고가 통화 중 내뱉은 “겁 줄까?”라는 말이다. 녹음 파일은 없지만, 당시 스피커폰으로 가족이 함께 들었다. 이 발언을 법정에서 유리하게 쓸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표했다. 길기범 변호사는 “원고가 법적 절차를 정당한 권리 구제가 아닌, 피고를 압박하고 '겁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정황은 판사에게 원고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좋은 참작 사유가 됩니다”라며 활용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봤다.


그러나 입증의 벽은 높다. 박영재 변호사는 “'겁 줄까' 발언은 녹음이 없으면 입증이 약하고, 본안(책임/손해액)과 직접 관련이 없으면 재판부에 감정싸움처럼 보일 위험이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섣불리 꺼냈다가 감정싸움으로 비쳐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숭완 변호사 역시 “입증이 약한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면 오히려 신뢰도가 낮아질 수 있으므로, 보조적 사실로만 활용하는 것이 낫습니다”라고 조언했다.


결국 가족 진술서 등으로 최소한의 증거를 확보하되, 소송의 향방을 바꿀 결정적 카드로 쓰기보다는 원고 주장의 신뢰도를 흔드는 보조적 수단으로 신중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