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억 셀프대출 받아 부동산 쇼핑⋯은행에서 잘렸지만 완전히 남는 장사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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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억 셀프대출 받아 부동산 쇼핑⋯은행에서 잘렸지만 완전히 남는 장사인 이유

2020. 09. 03 15:39 작성2020. 09. 03 17:23 수정
안세연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y.ah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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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직원, 76억원 '셀프대출' 받아 부동산 투기⋯수익만 60억원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높지만

변호사들 "대출 자체로는 처벌 불가능⋯손해배상도, 몰수도 전부 어렵다"

대출 심사를 담당하는 은행원이 자기 가족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 76억원을 '셀프대출'한 사건이 발생했다. 시세 차익만 약 60억원의 재산을 증식해 논란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셔터스톡⋅편집=조소혜 디자이너

대출 심사를 담당하는 은행원이 자기 가족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 76억원을 대출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은행원 가족은 이 돈을 종잣돈 삼아 쇼핑하듯 부동산 29채를 매입했고, 시세 차익으로만 50~60억원의 재산을 증식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은행원이 가진 재량을 악용한 '셀프대출'이라는 비판과 함께 "엄벌은 물론, 투자수익까지 전부 몰수⋅추징해야 한다"는 여론이 활활 타올랐다. 내부감사 결과 은행 측은 이 직원을 면직처리 했고, 원금을 회수할 계획이지만 "이 정도 조치로는 부족하다"는 여론이 다수다. 사건이 벌어진 기업은행은 국책은행. 고객은 물론 국민의 신뢰를 크게 떨어트린 만큼 "그 책임이 무겁다"는 목소리가 거셌다.


'76억 셀프대출' 자체로는 처벌할 수 없는 두 가지 이유

하지만 변호사들은 의외의 견해를 밝혔다. "부당하다고 생각되지만, 법적으로는 어렵다"고 했다. 어째서일까.


법률 자문
'변호사 류홍섭 법률사무소'의 류홍섭 변호사, '변호사 최진혁 법률사무소'의 최진혁 변호사, '법무법인 최선'의 이준상 변호사. /로톡 DB
'변호사 류홍섭 법률사무소'의 류홍섭 변호사, '변호사 최진혁 법률사무소'의 최진혁 변호사, '법무법인 최선'의 이준상 변호사. /로톡 DB


①형법상 업무상 배임죄 처벌 어렵다

"명의 빌린 것이 '임무 위배 행위' 아니기 때문"

은행 직원이 부실 대출로 재산상 이득을 취하고, 그 결과 은행에 손해를 끼쳤을 때는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제356조)로 처벌된다.


언뜻 보면 '셀프대출' 은행원을 이 죄로 처벌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은행의 사무를 대신해서 처리하는 은행원에게는 여러 규정을 지킬 의무가 존재하는데, 이를 어겼으니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이 죄는 성립하기 어렵다"고 했다. "구성 요건(임무 위배 행위)을 충족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2년간 판사로 근무한 류홍섭 변호사(변호사 류홍섭 법률사무소)는 "해당 직원이 명의만 여러 사람의 것을 빌렸을 뿐, 담보 평가 등 나머지 절차는 규정에 맞게 대출을 실행했다면 '임무 위배행위'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변호사 최진혁 법률사무소'의 최진혁 변호사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실제 대출이 나갈 수 없음에도 문서를 위조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출을 실행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명의만 빌렸다면 (죄의 성립이) 어려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②은행법 위반도 처벌 어렵다

"대출금 총액이 한도 넘지 않았기 때문"

은행의 건전한 운영 지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은행법. 그 취지대로 이 법을 통해 직원을 처벌한 순 없을까. 역시 변호사들은 "어렵다"고 했다. 이 법에는 '셀프대출'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고, 그나마 생각해볼 수 있는 조항도 "요건을 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류홍섭 변호사는 "여기에도 마땅한 처벌 규정이 없어 보인다"며 "은행법이 제35조에서 '동일한 개인⋅법인 등에게는 그 은행이 가진 자본의 25%를 초과하는 신용공여(대출을 해주는 것)를 할 수 없다'고 제한하고 있긴 하지만, 역시 해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기업은행의 자본 규모를 생각해봤을 때 대출금 총액(76억원)이 여기서 정한 한도(기업은행 자본금의 25%)를 초과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실제 지난해 기준 기업은행의 자본금은 3조 3756억원. 대출은 받은 76억원은 약 0.2%에 불과하다.


부동산 실명법 위반 처벌 가능성은 있지만⋯범죄수익 몰수는 불투명

다만 "부동산실명법 위반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류 변호사는 밝혔다. 이 법이 제3조 제1항에서 "누구든지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명의수탁자(명의상 소유자)의 명의로 등기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었다.


류 변호사는 "해당 직원은 다른 사람 명의로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했으니, 등기 역시 명의를 빌린 사람들 앞으로 했을 것"이라며 "이때 배우자 명의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나머지 명의(모친 등 다른 가족 및 법인)에 대해서는 이 조항을 어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때 처벌은 실제 소유자인 은행 직원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 등기에 이름을 올린 이들의 처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다.


대출 담당자의 '76억 셀프대출'을 본 변호사들은 "부당하다고 생각되지만, 법적으로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셔터스톡⋅기업은행⋅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현재 여론은 "몰수나 추징을 통해 범죄수익을 회수해야 한다"는 쪽이 강하지만, 역시 변호사들은 "법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류 변호사는 "부동산실명법에는 몰수⋅추징 조항이 없고 형법상 가능해 보이긴 하지만, 실무적으로 재판부가 몰수⋅추징을 선고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의무' 사항이 아니라, 재판부의 재량에 맡겨진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했다.


"명의신탁을 했다는 이유로 그 부동산 자체를 몰수, 추징한 사례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어려움이 있는 건 우리나라 몰수제도의 특성 때문이다. 법무법인 최선의 이준상 변호사는 "미국 등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독립 몰수'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몰수⋅추징은 부가형(주된 형벌에 함께 부가되는 형벌)이기 때문에 유죄판결이 내려지지 않는 경우 애초에 범죄수익을 몰수, 추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기업은행은 왜 직원에게 손해배상 청구도 할 수 없을까

민사적으로는 어떨까. 기업은행이 직접 직원에게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거는 경우다. 하지만 이것도 변호사들은 "어렵다"고 했다. 대출금 등을 돌려받게 되는 이상 기업은행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고, 투자 수익은 더더욱 기업은행의 손해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류 변호사는 "직원이 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대출을 실행했고, 은행도 해당 대출의 원리금을 차질없이 회수하고 있다면, 은행에 어떤 손해가 있다고 할 수 없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최진혁 변호사도 "면직 처분 외에 추가 제재는 힘들 것 같다"며 동의했다.


이준상 변호사 역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걸더라도, 전부 기각될 가능성도 있다"며 "투자 수익은 기업은행의 손해와 관련 없는 부분이어서 청구할 수 없다"고 했다.


"대출 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것도 약정서 규정에 따라 회수할 수 있는 것일 뿐, 변제기(직원이 대출금 등을 돌려줘야 하는 시기) 이전에는 이것도 회수할 수 없다"고 류 변호사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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