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표절 의혹, 역사물도 저작권 침해 성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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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표절 의혹, 역사물도 저작권 침해 성립할까?

2026. 03. 10 10:09 작성2026. 03. 10 15: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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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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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측 "7가지 설정 동일해" 내용증명 발송 vs 제작사 "독자적 원안 존재" 정면 반박

법조계 "역사적 사실 아닌 '창작적 각색' 유사성이 법적 쟁점"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 /연합뉴스

개봉 한 달여 만에 누적 관객 수 1150만 명을 돌파하며 1200만 고지를 눈앞에 둔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예기치 않은 암초를 만났다.


과거 방송사에 투고되었던 미방영 드라마 대본과 유사하다는 표절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단순한 윤리적 표절 논란을 넘어, 역사물을 둘러싼 치열한 저작권 침해 법리 공방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등장인물과 얽힌 사실관계는 명확하게 대립한다. 영화는 1457년 청령포를 배경으로 폐위된 어린 왕 단종 이홍위와 마을 촌장 엄흥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에 대해 2019년 작고한 연극배우 A씨의 유족은 영화의 핵심 설정이 A씨가 2000년대 집필한 드라마 초고 '엄흥도'를 표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엄흥도의 31대손인 A씨는 과거 해당 시나리오를 방송사에 투고했으나 실제 제작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유족 측이 지적하는 유사점은 총 7가지다. 단종이 엄흥도의 권유로 식사를 하고 마음을 여는 과정, 낭떠러지 투신 구조 장면, 엄흥도의 아들이 관아에 압송되는 전개 등이 포함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역사적 사실과 달리 여러 명의 궁녀를 '매화'라는 단일 인물로 합친 점과, 실제 삼남이었던 엄흥도의 자녀를 외아들로 각색한 점이다. 유족은 원작자 명시를 요구하며 제작사에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반면 제작사 측은 단호한 입장이다. 제작사는 "해당 영화에는 분명한 원안자가 별도로 존재한다"며 "기획이나 제작 과정에서 다른 작품을 참고하거나 접한 적이 결코 없다"고 표절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역사적 사실은 표절 불가능? 핵심은 '창작적 각색'의 유사성

대중은 흔히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데 표절이 성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법률적으로 접근하면 '표절'과 '저작권 침해'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표절이 타인의 저작물을 자신의 것인 양 출처 없이 사용하는 윤리적·규범적 문제라면, 저작권 침해는 법이 보호하는 권리를 무단 이용해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강력한 법적 문제다.


저작권법의 대원칙 중 하나는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이다. 저작권은 사상이나 감정을 구체적으로 나타낸 '표현'만을 보호하며, 그 안에 담긴 '아이디어'나 역사적 사실 자체는 보호하지 않는다.


단종과 엄흥도의 관계, 단종의 유배 생활, 엄흥도의 충절 등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므로 이 부분의 유사성만으로는 저작권 침해를 물을 수 없다.


그러나 법원은 역사물이라 하더라도 창작성이 가미된 구체적인 각색이나 설정은 독자적인 저작물로 보호한다. 서울고등법원은 역사적 사실로부터 추론할 수 없는 인물이나 사건, 즉 '역사적 오류'를 창안해 가미한 경우 소재의 조합과 구성의 독창성을 인정해 창작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서울고등법원 2012. 12. 20. 선고 2012나17150 판결).


이번 사안에서 가장 결정적인 법적 쟁점은 바로 궁녀를 '매화'로 단일화한 설정과 삼남을 외아들로 바꾼 대목이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된 '창작적 표현'에 해당한다.


두 작품에서 이러한 창작적 변형이 동일하게 나타난다면, 이는 단순한 우연을 넘어 실질적 유사성을 판단하는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


2000년대 대본, 제작사는 보았는가… '의거관계' 입증이 관건

저작권 침해가 법적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두 작품 간의 '실질적 유사성' 외에도 피고가 원고의 저작물에 접근하여 이를 베꼈다는 '의거관계'가 반드시 입증되어야 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기존 저작물에 대한 '접근 가능성'과 두 저작물 사이의 유사성이 인정되면 의거관계가 추정된다(대법원 2014. 5. 16. 선고 2012다55068 판결).


A씨가 2000년대에 방송사에 시나리오를 투고했다는 사실은 유족 측이 접근 가능성을 주장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하지만 제작사가 "다른 작품을 접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만큼, 유족 측은 투고된 대본이 어떻게 영화 제작진에게 흘러 들어갔는지 그 연결 고리를 증명하거나, 독립적으로 창작되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현저한 유사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결국 이 사건의 향방은 법원의 최종 판정에 달렸다. 대법원은 표절을 원인으로 법률관계 다툼이 발생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 경우, 표절 여부에 관한 최종 판정 권한은 법원에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대법원 2016. 10. 27. 선고 2015다5170 판결).


1200만 관객의 마음을 울린 촌장 엄흥도의 이야기가 법정에서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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