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반복 않겠다’ 외쳤지만…또 희생, 또 집행유예
국방부 ‘반복 않겠다’ 외쳤지만…또 희생, 또 집행유예
'실수 노트' 강요한 책임자들
가해자 '집유' 면죄부 논란

고 김상현 이병 추모하는 장병들 / 연합뉴스
육군 일반전초(GOP) 부대에 전입한 지 한 달 만에 간부와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 김상현 이병이 사망 약 3년 만에 차가운 냉동실을 벗어나 영면에 들었다.
지난 2025년 10월 30일 오전,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김 이병의 영결식이 사단장(葬)으로 엄수됐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인의 진상규명을 위해 유가족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3년을 버텨왔다.
영결식장에는 김 이병과 같은 부대에서 복무했던 동기의 추도사가 울려 퍼져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특히 밀가루를 먹지 못했던 고인이 동기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함께 라면을 먹었던 사연과, "작은 한 그릇의 라면 속에 담긴 너의 마음이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큰 선물이었다"는 마지막 인사는 먹먹함을 더했다.
고인은 2022년 9월 5일 입대해 10월 27일 강원도 인제군 12사단 GOP 부대에 배치된 후, 간부와 선임병들로부터 모욕, 협박, 실수 노트 작성 강요 등 지속적인 가혹행위를 당했다.
결국 전입 한 달여 만인 11월 28일 초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으며, 사망 2년여 만인 올해 2월에야 순직을 인정받았다.
고인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안장되었다.

'민폐 캐릭터' 조롱으로 시작된 비극, 가해자는 '집행유예'에 그쳐
김 이병에게 가혹행위를 가한 가해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군 인권에 대한 논란을 다시 키우고 있다.
조사 결과, 당시 분대장이었던 간부는 유명 웹애니메이션의 '민폐 캐릭터'가 김 이병과 비슷하다며 조롱하듯이 모욕을 주었고, 선임병들은 GOP 근무 숙지 미흡 등을 빌미로 지속적인 괴롭힘을 일삼았다.
김 이병을 괴롭힌 것으로 드러난 김모(23)씨, 민모(25)씨, 송모(23)씨는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각각 징역 6개월, 징역 4개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선고받았다.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에 이르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이 대부분 실형을 면한 것이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영결식에서 "여전히 매년 100명 안팎의 소중한 사람이 군대에서 진다"고 지적하며, "부디 이곳 영결식장에 '반복하지 않겠다'는 말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는 가혹행위에 대한 관대한 처벌 수위가 군 인권 침해의 고질적인 비극을 반복하게 만드는 핵심 원인임을 시사한다.
최근 판례들을 살펴보면,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 사건에서도 가해자들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경우가 대다수다.
군형법상 가혹행위죄의 법정형은 직권남용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위력행사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실제 선고형은 이보다 현저히 낮게 형성되고 있다.
가혹행위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입증의 어려움, 양형기준의 부재 등이 관대한 처벌의 배경으로 지적된다.

비극의 고리 끊을 '사법 정의'와 '제도 개혁' 동시 시급
故 김상현 이병 사건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혹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와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1. 군형법상 가혹행위죄 처벌 강화
- 법정형 상향 및 결과적 가중범 신설: 가혹행위로 인한 자살 등 중대한 결과 발생 시 가중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법정형의 하한을 설정하여 벌금형이나 지나친 집행유예 선고를 제한해야 한다. 현행 군형법 제62조의 벌금형을 삭제하거나 대폭 상향하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한다.
- 지휘관 감독책임 명문화: 가혹행위를 방치하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지휘관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하고, 보고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여 지휘관의 책임성을 실질화해야 한다.
-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가해자 개인과 국가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여 가혹행위 예방에 실질적인 경제적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
2. 신병 및 신고제도 실효성 확보
- 전입 초기 집중관리 시스템: 김 이병 사례처럼 전입 후 1개월의 취약 시기에 멘토-멘티 제도의 실질적 운영, 주 1회 이상 지휘관 면담 의무화 등 신병 보호 관리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 신고 및 구제제도 독립성 강화: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신고가 가능하도록 익명 신고 채널을 활성화하고, 신고자에 대한 철저한 신원 보호와 보복행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군인권보호관 제도의 독립성과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 외부 전문가 감시체계 구축: 군대라는 폐쇄적 환경의 특수성을 극복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에 의한 정기적 부대 진단 및 독립적 감시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군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장병들이 안전하게 복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공허한 구호가 아닌, 엄정한 사법적 처벌과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이 시급한 과제로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