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 시비에 '맞짱 각서' 쓰고 싸우다 사망…법원은 왜 가해자에게 무죄를 줬을까
주차 시비에 '맞짱 각서' 쓰고 싸우다 사망…법원은 왜 가해자에게 무죄를 줬을까
아파트 주차 시비가 부른 참극
폭행치사 혐의는 '무죄'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서로 책임 묻지 말자"며 이른바 '맞짱 각서'를 쓰고 싸우다 한 명이 숨졌지만, 법원은 가해자에게 폭행치사 무죄를 선고했다.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당사자 간 합의 하에 싸움을 벌이는 이른바 '야차룰'이 유행하는 가운데, 사적 각서의 법적 효력과 폭행 사망 사건의 처벌 기준에 관심이 쏠린다.
26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에서는 주차 문제로 시작된 몸싸움이 사망으로 이어진 실제 사건을 조명하며 해당 쟁점을 짚었다.
주차 시비에 "각서 쓰고 붙자"… 결과는 '급성 심장사'
비극은 지난 2024년 2월, 경기 평택시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시작됐다.
불법 주정차 스티커 부착 문제를 두고 동대표 회의 중이던 40대 A씨와 50대 B씨 사이에 말다툼이 붙었다. 갈등이 격해지자 두 사람은 '싸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직접 작성하고 회의실 밖에서 몸싸움을 벌였다.
결과는 참혹했다. A씨의 주먹과 발에 얼굴 등을 가격당한 B씨는 몇 걸음 걷다 쓰러졌고, 끝내 목숨을 잃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망 원인을 급성 심장사로 판단하며 폭행과 사망 사이의 연관성을 일부 인정했다. 이에 검찰은 A씨를 폭행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법원 "때린 건 맞지만, 죽을 줄은 몰랐을 것"
그러나 1심과 항소심 재판부 모두 폭행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폭행은 유죄지만, 치사(사망에 이르게 함)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이러한 판결의 핵심은 '결과적 가중범'의 성립 요건에 있다.
방송에 출연한 로엘 법무법인 임흥준 변호사는 "폭행치사죄가 성립하려면 폭행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는 물론, 추가로 피고인이 상대방이 사망할 수 있다는 걸 예견할 수 있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폭행이 사망 원인 중 하나가 됐다는 인과관계는 인정했다.
하지만 당시 A씨가 주변 사람들에게 몸이 붙잡혀 온 힘을 다해 걷어차기 어려웠던 점, 감정 결과 폭행 정도가 생명을 위협할 수준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을 들어 "생명 위험을 예견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사망 피해자가 먼저 제안한 각서, 가해자 '집행유예'에 영향
그렇다면 두 사람이 쓴 싸움 각서는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놀랍게도 각서 작성을 먼저 제안한 것은 숨진 B씨였다.
임 변호사는 "피해자가 먼저 싸움을 제안하고 각서까지 썼다는 건 형량을 정할 때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작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재판부는 피해자가 먼저 폭행한 점, 우발적 범행인 점을 고려해 A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다만, 각서 자체가 폭행치사 무죄의 직접적인 이유가 된 것은 아니다.
변호사들 "야차룰·신체포기 각서? 찢어버려도 무방한 불법"
최근 유튜브 등에서 변호사까지 대동해 결투 각서를 쓰는 이른바 '야차룰' 콘텐츠가 화제지만, 법조계는 이를 "위험한 착각"이라고 일축했다.
임 변호사는 "민법에서는 선량한 풍속에 반하는 계약은 무효로 본다"며 "맞아주는 대가로 빚을 탕감해준다는 약속 등은 그 자체로 통념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형사법상으로도 피해자가 동의했다고 폭행이 합법이 되는 것은 아니며, 특히 다쳐서 상해 수준으로 넘어가면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된다고 경고했다.
법 앞에서는 어떤 이유로든 타인의 생명과 신체를 훼손하는 야만의 룰이 용인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