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을, 사색의 계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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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을, 사색의 계절 (2)

2022. 10. 14 14:41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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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jung@soul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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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 초기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동아시아 최고 수준이었고, 장영실을 비롯한 과학기술자들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은 현대에 들어와서 대한민국이 첨단산업 기술의 강국이 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셔터스톡

1. 통찰의 시작-행복이라는 언덕, 불행이라는 언덕

인생 2.5모작 열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늘이 높고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시절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한가위 명절에 이어, 10월 들어와서 날씨가 무척 쌀쌀해졌습니다. 어릴 적 이맘때는 가을소풍은 물론 국군의 날, 개천절, 한글날, UN기념일까지 국경일이 겹쳐서 항상 기다려지던 계절입니다. 하지만 나이 든 요즘에는 가을 단풍이 물든 아름다운 풍경에서 자연의 순리와 인생의 본질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성숙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달도 "인생의 가을, 사색의 계절(2)"이라는 제목으로 이어서 글을 씁니다.

지난달 칼럼은 원고 분량이 7500자나 되는 긴 글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장문의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이나 쪽지로 격려와 소감을 보내주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 가운데 "긴 글 곱씹으며 읽느라 고생은 했다만 진섭의 글이 어렵구나. 내가 이런 글을 읽는 것만 해도 천우신조... 사색의 계절 가을을 맞아 글 읽고 명상하는 시간들을 가져야겠다."고 적어준 친구에게 감사의 답장 겸해서 간단하게 보충 설명을 드립니다.

제 글이 어렵게 느껴진 것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제가 합일, 사랑, 공경, 정직, 정의, 친절, 연민과 같은 인간 정신의 위대한 측면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어떤 답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제 삶의 여정을 세 토막으로 나눠서, 지금의 삶을 인생 2.5모작으로 표방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살아야겠다. 저렇게 살아야겠다."하는 어떤 정형이나 목적을 갖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인생을 살다 보니, 삶이라는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 보니, 강기슭에 행복이라는 언덕도 불행이라는 언덕도 나타나서 올라가 보게 되었고, 그때마다 불행의 언덕은 피하고 싶고, 행복의 언덕을 부러워하면서 쉬었다 가기도 했지만, 삶에 대한 미련과 여한이 사라질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늦게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강물의 흐름을 무심하게 받아들이고, 바다에 이르러 하나가 되는 것이 내 삶의 남은 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바다에 도달해서도 삶에 대한 미련과 여한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남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후회뿐일 테니까요.

바다에서는 하나의 물방울이 스스로 물방울이라고 주장하지 않듯이, 인생의 본질에 대한 통찰은 바로 '나는 누구다'하는 규정이나 고정관념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는 동안에 '죽은 자의 지혜'를 이해하고, 그것을 내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며 통찰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참다운 통찰은 '지금의 나'가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목적도 바로 '지금의 나'라는 꿈에서 깨어나, 인간 정신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시작하려는 저 자신의 노력이자 몸부림입니다.

2. 가을의 도심 산책-만일 이 삶이 꿈이라면?

지난 주말 모처럼 서울 4대문 안 도보 산책을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날 하루 2만보 넘게 걸었더군요. 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에 내려서 세운상가 공중도로를 거쳐, 청계천변 전기공구 상가를 구경하며 걷다가 전태일 기념관 나눔 쉼터에 잠시 앉았습니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 힘차게 흐르는 개울물 소리와 참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도심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구경하며, 정조대왕 능행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동아일보 사옥 옆으로 교차로를 건너 광화문 광장에 들어섰습니다. 새로 단장한 광장에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종대왕 동상 앞의 앙부일구, 측우기, 혼천의를 구경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 건국 초기 중국이 아닌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천문관측기를 만들고, 측우기 보급을 통해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애민사상이 담겨 있으며, 천문관측기와 해시계 이외에도 로켓무기의 일종인 신기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등은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로 꼽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동아시아 최고 수준이었고, 장영실을 비롯한 과학기술자들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이야말로 현대에 들어와서 대한민국이 첨단산업 기술의 강국이 되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 /정진섭 변호사 제공


제가 지난달 칼럼에서, '천재 한명이 세상을 바꾼다'는 사례로 아인슈타인 박사의 일화나 미국 NASA의 천체망원경 소식을 인용했지만, 약간 국뽕하는 마음으로 말하자면 중세 유럽의 연금술보다 조선 초기 장영실의 발명품이 더 뛰어났고, 거기에 담긴 장인(匠人) 정신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면, 유럽의 르네상스를 이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창의력 못지않은 역사적· 학술적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것을 가로막은 이유는 아마도 유교문화와 신분제 사회라는 고정관념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어서 청와대 사랑채로 올라가, 친구들과 합류해서 청와대 영빈관, 본관, 관저, 상춘재, 녹지원, 춘추관 순서로 내부 관람을 했습니다. 지난 6월 초 단체관람을 했지만 많은 인파로 바깥에서만 구경했는데, 이번엔 관저 뒤편의 등산로를 따라 오운정과 미남불까지 충분하게 구경하고 내려왔습니다. 비록 우리 세대는 6.25 전쟁 직후 태어나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왔지만, 어느새 아름답고 평화로운 나라가 된 대한민국의 현재를 반나절이나마 만끽한 시간이었습니다.

문득 이 삶이 꿈이라면 이런 모든 경험과 체험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몽땅 꿈이라면, 이런 행복한 순간들이 모두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마찬가지입니다. 설령 이 삶이 꿈이라 해도, 훌륭한 선택입니다. 이번 도심 산책의 가치는 그만큼 소중하고 즐거웠습니다. 왜냐하면 그림자가 있으면 어떤 물체를 비추는 빛이 있다는 증거이듯이, 꿈을 꾼다는 것은 꿈을 꾸는 자가 있다는 증거이며, 꿈에서 깨어났다는 것을 아는 자는 '꿈속의 배역'이 아니라, 스스로 꿈에서 깨어난 자이기 때문입니다.


3. 합일의 이해-사람들의 상상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릴 적부터 산수와 수학을 싫어한 제가 천체물리학이나 우주과학에 특별한 지식을 갖추었을 리는 만무합니다. 그저 누구나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과 관심을 저도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난달 제임스웹 천체망원경의 관측 성과를 인용하면서 우주의 크기와 빅뱅 이야기를 꺼낸 탓에 어떤 독자님께서 오해하시고, 천문학이나 천체물리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는 질문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해를 풀어드 릴 겸해서 제가 매주 토요일 꾸준히 참여하는 공부 모임에서 오고 간 "우주는 어떤 모양일까?"에 대한 5년 전 문답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이 문답 대화는 인간정신에 대한 지성적 이해를 통하여 자기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그 본질을 통찰하기 위한 담선(談禪)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나온 질문과 답변입니다. 답변자는 '불멸의 자각' 저자 진경(眞鏡)이고, 저는 그 답변을 청취하면서 간간이 질문에 참여한 청중의 입장입니다.



질문: 우주는 어떤 모양인가? 호리병 모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답변: 예를 들어서 이 우주가 어떤 모양이 있다고 한다면, 그 자체로 모순이 아닐까? 흔히 우리는 그저 상식적으로 우주가 모양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모양이 있다는 말 자체로 그건 모순이다. 왜냐하면 모양이 있다는 자체는 이미 경계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경계 너머는 뭐라고 표현하느냐 말이다.

만일 우주가 어떤 모양이 있다고 하면, 그 우주 안에도 다양한 모양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냥 우주 전체를 하나로 보고 우주가 어떤 모양이다, 예를 들어서 동그라미다, 삼각형이다, 사각형이다 하면 그 동그라미다, 삼각형이다, 사각형이다 하는 그 너머는 뭐냐 말이다.

그 너머는 어떤 경계되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우주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그 너머 우주의 수백 배, 수천 배, 수만 배, 수억 배 경계가 없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는 어떤 무한대의 무엇이 있단 말이다. 그러니 우주의 모양이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하는 것은 굉장히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람들은 굉장히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사람이 우주는 호리병 모양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 그런가?' 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직관적으로 그 말들이 모순적이다 하는 걸 안다. 사람의 상상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상상을 아주 정교하게 글로 적어 놓으면,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은 그걸 가지고 사실적으로 받아들인다. 가장 단적인 예가 천문학이다. 천문학.

과학자들이 내놓은 천문학에 대한 책이나 논문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 저자들은 IQ 160, 170 넘는 천재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말 그대로 천문학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수학적으로 장대하게 책을 내고 논문을 펴냈다. 그런데 그걸 엄밀히 따지면 전부 다 추측 아닐까?

- 그럴 것 같기는 하다.

아니, 당연히 그렇다. 왜냐하면 그걸 직접적으로 시험을 하든가 증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말하는 천문학은 말 그대로 고도화된 추측이고 상상이라는 것이다. 그 정도로 사람들의 상상력이 엄청나게 상상해 낸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지학이나 유란시아 같은 신비주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발달된 천문학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 같은 것이다.

- 유란시아에서 말하는 우주관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인가?

당장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달조차도 뒷면에 대해 별별 상상 속의 이야기들이 퍼져있다. 우리 인류는 태양계 안에 있는 행성이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이외에 몇 개가 더 있는지도 모르고, 중세 유럽의 갈릴레오가 목성의 달 4개를 발견했지만, 아직까지 목성의 위성이 몇 개인지도 모르고 있다. 며칠 전 2개가 더 발견되어 지금 67개가 되었는데, 앞으로 과학이 더 발전하고 관측 장비가 발달되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 목성의 달조차 몇 개인지도 모르고 있는 판에, 하물며 은하수 넘어서 다른 은하계까지 실제 모양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게 전부 다 가설이다. 말은 가설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인간의 상상의 산물이다. 상상.

- 상상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사실처럼 생각되는 것인가?

내가 말하는 게 바로 그 점이다. 만일 과학자들이 어떤 하나의 가설을 '진리'라고 하면 더 이상 다른 가설을 찾을 수가 없어야 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가설은 여기까지다 하면서 또 다른 가설이 있을 것이다 하고 계속 연구를 하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의 천문학이다. 조만간 허블망원경을 교체한다고 한다. 교체되고 나면 관측 범위가 수십 배 더 올라간다고 한다. 그러면 또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신지학이나 유란시아 같은 것이 사람들의 상상이 아니고 뭐겠어.



저는 이 대화를 경청하면서, 이 우주에는 너무나 궁금한 것이 많고, 수많은 상상과 추측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지만, 아무리 새로운 우주 이론이 나와도, 육신을 기반으로 하는 '지금의 나'라는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면 무의미한 상상과 추측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육신의 나(존재)'만을 '나'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나'의 본질에 대한 완벽한 착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내 마음이 아름다우면 온 세상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거꾸로 온 세상이 아프면 내 마음도 아픈 법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온 세상은 '하나'이며, 합일(合一)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강기슭에 앉아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가는 시간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지만,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전체 강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것과 비슷하게, 허공(비존재)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일체로서 하나이며(一切卽一), 나누어질 수 없는 허공까지 포함한 일체(一體)가 더 본질적인 '나'라는 통찰을 받아들이고, 넉넉히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의식의 세계에는 거리 개념이 없다'는 말은 선뜻 이해가 쉽진 않았지만, 마치 사람의 팔다리에 바늘을 찌르면 -전혀 시차가 없이- 그와 동시에, 뇌를 비롯한 전신에 아픔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로 비유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이런 현상은 모든 존재와 비존재의 가교인 '사랑'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참새와 허공의 관계에 비유할 때, 마치 허공의 자유가 참새의 자유보다 더 본질적이라는 이치에 따라 곰곰이 통찰해 보면, 정말 자연스러운 결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무명 변호사의 일상-견성성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조그만 개인 변호사들은 많이 힘든 실정입니다.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긴 세월 특허, 상표, 저작권, 영업비밀 등 지식재산권 분쟁을 주로 해결해 왔지만, 나이 탓인지 몰라도 점점 사건처리가 벅차게 느껴집니다. 맡은 사건 하나하나에 너무 정성껏 매달리다 보니, 저의 판결예측이 어긋나기도 하고, 사랑이 깊으면 아픔도 그만큼 크듯이, 세월만 무심하게 흘러가 버리고 있습니다.

어느 공익법인에 근로자로 일한 미국인 교수 한분이 체불임금 3년치 반환소송을 의뢰해서 승소판결을 받아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판결 확정 후 피고 법인이 자진 변제를 거부하고, 채무명의를 확보하고도 법인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민사집행을 못 하는 사이 5년이나 흘렀습니다.

그동안 대표자 개인을 상대로 형사고소를 해서 근로기준법위반의 유죄판결을 얻었지만, 정작 대표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은 1,2심 연이어 패소했습니다. 이에 대법원 상고를 제기했는데, 두 달 만에 피상고인 답변서도 없이 심리불속행 기각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지만 더 이상은 속수무책이라, 마음만 아픈 상황입니다.

문득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끝없이 사랑하라. 나는 너와 다르지 않다. 다만 너는 끝없이 사랑하지 않고, 나는 끝없이 사랑할 뿐이다. 비록 그런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나는 너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 너도 끝없이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와 다르지 않음을 너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몇 달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아래 그림을 보면서 힘을 냅니다. 지난달 장인어른의 천우신조(天佑神助) 글귀를 소개했더니 부러워하는 분들이 계셔서, 이번 달엔 장모님께서 남겨주신 유품 한 점을 소개해 드립니다. 달마대사 모습에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액자라, 처갓집에 오랫동안 부적처럼 벽에 걸려있던 그림입니다. 여러분 모두~ 사랑의 성불하시기 바랍니다.


달마도. /정진섭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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