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2)] 이 편지 네가 보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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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교수 에세이 (2)] 이 편지 네가 보냈지?

2019. 07. 05 16:21 작성
정형근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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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편집 : 김주미 기자

-편집자 주-

법조와 법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경희대 로스쿨 정형근 교수가 지나 온 감동의 라이프 스토리를 연재로 전한다.

또래 아이들이 등교할 때 그는 뒷산에 나무를 하러 가야만 할 정도로 가난했다. 19세가 되어서야 중학교를 마쳤으나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9급 검찰 공무원이 된다. 만학도로서 법대 진학에 성공한 기쁨도 잠시, 그해에 연탄가스 사고로 어머니와 형제를 잃는다. 깊은 비탄을 안고 사법시험을 준비한 끝에 36세의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이후 변호사 생활을 하는 중, 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교원을 충원하던 모교 경희대의 제안으로 로스쿨 교수가 된다. 그는 경희대 로스쿨 원장을 역임했고, 청탁금지법, 법조윤리 분야 전문가다.



정형근 교수의 ‘New & Living Way’ (2)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검찰청 근무는 잘 적응해 갔다. 낯설었던 부산 지리도 익숙해졌다. 하숙생들과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저녁에는 광복동으로 나가 소주도 한 잔씩 나눴다.


직장과 부산 생활은 적응해 가는데, 제대로 못 하는 게 있었다. 공부하는 것이었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면, 몸이 노곤하고 무거워졌다. 독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자고 다짐하지만, 책만 펴면 스펀지에 물을 끼얹어 놓은 듯 몸이 흐느적거렸다. 잠깐만 쉬자고 누웠다가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출근을 할 때면 오늘부터 열심히 하자고 다짐하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아무리 각오를 다져도 과거 공무원시험 공부할 때처럼, 절박함이 생기지 않았다. 그 대신 마음 한켠에는 ‘반드시 사법시험을 붙어야 하나? 사람이 적당히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많았다.


“그래, 너무 바둥거리지 말고 적당히 만족하며 살자.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비록 하위직이지만, 23세에 공무원으로 출발하였으니, 40~50대에 이르면 승진도 할 것이라 어느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중졸이라는 최종학력은 나의 최대 약점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에 자족하며 살아가도록 합리화하는 좋은 구실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시에 합격하자는 꿈도 희미해졌다. 마음 깊이 품고 살았던 무거운 짐이 벗겨지니까 몸도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그래서 퇴근 후에는 자갈치시장에서 푸짐한 아나고 회에 한잔하는 여유도 누렸다. 비로소 인생의 행복과 자유를 맛보게 되었다.


그런데 퇴근 후나 주말에 남아도는 시간이 많아 무료해졌다. 하숙집에서 혼자 지내는 것을 알고 있던 직장 선배들은 나에게 휴일에 뭐하냐고 묻곤 했다. 할 일이 없어 무료하게 지낸다고 했더니, 그러면 자기 당직 근무를 대신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당직 날에 급한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당직서는 것은 밤을 새는 게 조금 힘들지만, 많은 사건처리 과정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직원들과 안면도 틀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명의 당직 근무를 대신했더니, 어느 순간 청사 안에 소문이 쫙 퍼졌다.


토요일 또는 일요일에 당직이 걸린 분들이 찾아와 부탁하곤 했다.

“그럼요! 당연히 해드릴게요!”라고 하면서 토요일 오후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즐겁게 당직실에서 보냈다.


일요일은 아침부터 월요일 출근 시간까지 매우 긴 시간을 근무해야 했다. 당직 때 업무가 익숙해지고, 청년이라 밤을 새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경찰서에서 심야에 변사사건 보고를 하면, 변사체의 상태를 묘사하는 적나라한 표현에 어떨 때는 속이 메스꺼울 지경이었다. 저수지에서 발견된 익사체나 교통사고로 숨진 처참한 경우는 더욱 그랬다.


사실 사진 한 장 붙이면 그렇게 상세하게 쓸 이유가 없을 것인데, 사정이 그렇지 못했다. 그런 변사체 보고가 접수되면, 검사는 부검하는 등으로 사인(死因)을 규명하고, 사체는 유족에게 인계하라는 등의 지시를 내린다.


변사보고를 받으면 신속히 처리해야 하는데, 언젠가 상당히 지체된 경우가 있었다. 때마침 대검찰청에서 사무감사를 나왔다가 그 사실을 적발하고 “이래서 부산역에 내렸을 때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더라!”는 지적을 받은 일도 있었다.


어느 날 당직근무 신고를 하려고 사무국장실에 갔더니, 국장님이 “정형근씨, 당직을 너무 많이 서면 일상 근무에 지장이 있지 않나요?”라고 하였다. 내가 자주 당직 신고를 하러 가니까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 후부터는 남의 당직을 대신해 주지 않았다.


이후 주말이면 부산의 관광지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해운대를 가려면 버스에서 내려 아무런 건물도 없는 텅 빈 들판을 한참이나 걸어가야 해운대 모래사장이 나왔다. 황량한 해운대 바닷가에는 고무다라(대야)에 낙지 등 해산물을 담아 소주와 함께 판매하는 아주머니들이 앉아 있었다.


부산항 시장에서 판매하는 해물 / 이미지 출처 : 셔터스톡


거기서 뻥 뚫린 바다를 바라보면서 마시는 소주는 달달하여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틈만 나면 태종대도 찾았다. 태종대는 아무래도 오륙도 가는 유람선을 타는 게 좋다. 시원한 해풍이 머릿속의 잡념을 전부 날려준다.


돈을 내면 유람선 선실에서 노래도 한 곡 부를 수 있다. 단연 "돌아와요. 부산항에" 가 으뜸이다. 행락객들끼리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를 누가 더 잘하나 겨루는 경연장 같다.


그렇게 오륙도를 돌아오면, 태종대 입구의 해변 파라솔이 기다리고 있다. 초여름 따가운 햇살 아래서 힘차게 꿈틀거리는 신선한 낙지와 해산물에 한잔하다 보면, 금방 “아줌마, 여기 한 병 더요.” 연발하게 된다. 입안에서 착착 달라붙는 신선한 낙지가 자꾸 잔을 당기게 한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어느 날 오후!

방위병 근무를 함께 하였던 서울에 사는 동기(23세)가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나를 만나려고 그의 여자 친구와 부산역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근무 중이라 나갈 수 없으니 검찰청으로 오라고 했다. 얼마 후에 사무실로 도착한 그는 우산도 안 쓰고 비를 홀딱 맞은 상태였다. 나는 반갑게 그를 맞이하는데, 그 동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내가 부산으로 발령 났을 때, 축하한다고 송별회도 열어주었던 그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청사 안에 있는 매점으로 데리고 갔다. 음료수를 마실 거냐고 물었는데, 대꾸도 하지 않고 호주머니에서 편지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식탁 위에 그 편지를 올려놓으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이 편지 네가 보냈지?”

“내가 너한테 편지를 보냈다고? 그런 적 없는데...”

그러면서 편지 봉투를 슬쩍 보았다.


수신인은 그의 집 주소와 이름이 명확하게 적혀 있었는데, 편지를 보낸 사람은 알 수 없었다. 발신인의 주소와 이름이 적혀졌을 부분은 잉크가 시커멓게 번져 있었다. 발신인을 알 수 없는 편지였다.


나중에 알기로는, 우편 배달부가 그 편지를 대문 안으로 던져 놓았는데, 문 곁에서 기르던 강아지가 편지의 발신인 부분을 혀로 싹싹 핥아 버리는 바람에 잉크가 번져 누가 편지를 보냈는지 알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는 그 편지를 내가 보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나를 “패 죽이겠다”고 부산까지 그의 여자 친구랑 온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라서 저러나 불안했다. 그는 봉투 안에 들어 있는 편지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펜으로 검은 잉크를 묻혀 또박또박 아주 잘 쓴 글씨체였다. 편지를 보여주는 그의 태도가 살기등등하여 불안한 마음으로 급히 읽었다.


그 내용을 보니, “현재 네가 사귀고 있는 그 아가씨는 너하고 맞지 않으니까 그만 만나는 것이 좋겠다. 그 아가씨를 너의 결혼대상자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혼 상대는 절대로 될 수 없다. 더구나 친구 관계로 지내는 것도 너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 친구니까 진심으로 충고를 해준다.” 이런 내용이었다.


그 편지를 들고 있는 손이 떨려왔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입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놈은 정형근이다”라고 확신하고 나를 죽이겠다며 온 것이다.


순간 그와 그 여자 친구가 받았을 충격과 분노를 생각하니, 한편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확실하고 분명하게 해명하여 오해를 풀어주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그 편지의 글씨체와 내용을 찬찬히 보니까, 그 편지를 보냈을 것으로 짚이는 친구가 떠올랐다. 대학을 휴학하고 입대하였던 그 친구의 필체가 분명해 보였다.


그 친구는 학력도 대학 재학 중이고, 글씨도 잘 쓴다고 군부대 행정실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털어놓고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얼굴이 굳어 있는 동기에게

“야! 봐라! 글씨체가 완전 대학생이 쓴 것 같지 않냐? 너도 알다시피 나는 중졸이잖냐? 나는 볼펜 글씨나 쓸 줄 알지, 펜대 잡고서 이렇게 잘 쓸 수 없다고! 이 편지는 틀림없이 대학 다닌 ○○○이가 보낸 거 같아!”

그제서야 그의 얼굴이 좀 누그러졌다.


하지만 여전히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서울 간다며 악수도 하지 않고 곧바로 떠났다. 그로부터 얼마 후 대학을 휴학하고 입대했던 그 고학력 친구와 통화를 했다.


“너 아직 살아 있구나! 아무개가 너 죽인다고 했는데... 그 편지 네가 보냈지?”

그랬더니, 그는 한참 큰소리로 웃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는 집으로 찾아온 그 동기에게 편지 보낸 것을 사과하고, 정말 잘못 했다고 싹싹 빌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싫은 소리라도 친구를 위해서라면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

정말 개전의 정이 없는 녀석이었다.


부산까지 나를 찾아왔던 그 동기는 몇 년이 지난 후에 유학을 가려는 그의 아들을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아들에게 조언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당연히 그때 그 아가씨였다.


편지를 보내 이들이 교제하는 것을 뜯어말렸던 그 친구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심리 상담학의 최고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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