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청법이 800일 동안 개정되지 못했던 이유"⋯결국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
"아청법이 800일 동안 개정되지 못했던 이유"⋯결국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
지난달 30일, 800일 만에 처리된 아청법 개정안⋯'처리 기간이 길어진 이유' 살펴보니
법으로 정해진 기한 없는 '법안 처리'⋯순전히 '국회의원 의지'에 달려 있어
'n번방' 사건 등 아동 성범죄 발생 이후에야 뒤늦은 법안 처리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일부 개정 법률안의 처리가 800일 동안 미뤄진 배경에 특별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다. 처리 업무를 맡은 국회의원들이 뒤늦게 일을 한 것 뿐이었다. /대한민국 국회 홈페이지⋅그래픽 편집=엄보운 기자
지난달 30일, 국회에 800일 동안 잠들어 있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통과됐다. 20대 국회 종료를 불과 2주 앞둔 시점이었다.
극적으로 통과된 탓에 반가움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동시에 "무려 800일이나 걸린 이유가 무엇인가"하는 의문도 제기됐다. 관련 소식을 전한 로톡뉴스 SNS에도 같은 취지의 질문이 올라왔다.
실제 해당 법안은 지난 2018년 2월 논의가 중단된 후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다가 지난달 말 갑자기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랬던 이유는 무엇일까. 로톡뉴스는 개정안 처리가 중단된 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회의록을 되짚어봤다.
"선진 외국에서는 성착취로 규정해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조속히 심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난 2018년 2월 28일, 국회 법사위 전체 회의. 이날 회의에 출석한 정현백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이 권성동 당시 법사위원장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있었다. 아청법 개정안의 빠른 심의 즉,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권 법사위원장은 "개정안에 대해 심도 있는 검토를 하자"고 답할 뿐이었다. 정 장관이 "지금 위원님이 제안을 하신 것에 대해서도⋯"라고 말하려 했을 때는 권 위원장이 말을 끊어버렸다. 권 위원장은 "법이라는 것은 체계가 맞아야 되고 또 형평성이 유지되어야 되니까"라면서 서둘러 결론을 내버렸다.
법안을 '법사위 법안심사 제2소위원회'로 내린다는 결정이었다. 정 장관은 그 결정에 대해 한 마디도 말을 붙이지 못했다.
'법사위 법안심사 제2소위원회'로 간다는 말의 의미는 표면적으로는 "전문위원들의 면밀한 검토를 받아보자"는 취지지만, 실제론 "논의를 미룬다"는 의미다. 그리고 진짜 그렇게 됐다.
법안이 법사위에서 멈춰진 시간만 792일 동안이었다. 800일 중에서 8일을 뺀 날짜다. 정확히 비율로 99%다.
절차대로라면 792일 동안 법사위에서 수정과 보완을 거쳐, 다음 절차로 넘겼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전문위원이 개정안 검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아무도 열어보지 않았다.
국회가 이럴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법안 처리 기한이 없다는 게 가장 크다. 국회 사무처 의사국 관계자는 "법안 심사는 국회의원들이 하는 것"이라며 "정해진 시한은 없다"고 말했다. 법안이 빠르게 또는 느리게 처리되는 것은 이를 담당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달린 문제라는 취지다.
결론적으로 아청법 개정안 통과에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법사위 소속 의원들의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이 의원들이 모인 법사위 회의에서 연거푸 "잘 부탁한다"고 읍소한 것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정안이 갑자기 통과될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 여론 덕이다. 'n번방' 사건 등 아동 관련 성범죄 사건이 끊이지 않았고, 범죄자 처벌이 약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점이 꼽힌다.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며 사실상 '사형선고'를 당한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결국 아청법을 되살린 건 의원들의 의지가 아니었다. 더 일찍 처리됐으면, 범죄자에 대한 강한 처벌과 피해자 지원이 가능했을 아청법 개정안. 이 개정안은 언론이 들끓고 분노의 목소리가 국회를 뒤덮을 정도가 되고 난 뒤에야 겨우 통과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