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 성폭행 폭로한 후배들에 1억 승소…형사상 '무혐의'인데 왜 1억 물어주나
기성용, 성폭행 폭로한 후배들에 1억 승소…형사상 '무혐의'인데 왜 1억 물어주나
형사는 무혐의, 민사는 손해배상
‘증명의 문턱’이 갈랐다

기성용 선수가 자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초등학교 후배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연합뉴스
축구선수 기성용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후배들이 형사 처벌은 피했지만, 1억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됐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형사기관과 민사법원의 판단이 엇갈리면서, 그 배경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법원은 왜 이런 '모순된' 결론을 내렸을까.
4년에 걸친 법정 다툼, 엇갈린 결과
사건은 2021년 2월, 후배 A·B씨가 "초등학교 시절 선배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하며 시작됐다. 비록 기성용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전남의 한 초등학교 축구부, 2000년 1~6월 등 구체적인 정황을 통해 가해자가 기성용임을 누구나 유추할 수 있었다.
기성용 측은 즉각 결백을 주장하며 A·B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하는 동시에 5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2년 넘게 이어진 수사 끝에 경찰은 2023년 8월, A·B씨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형사 절차상 A·B씨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민사 법정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정하정 부장판사)는 9일, "A·B씨가 공동으로 기성용에게 1억 원을 지급하라"며 기성용의 손을 들어줬다.
왜 형사는 '무죄'인데 민사는 '유죄'인가?
이는 범죄 성립을 따지는 형사재판과 개인 간의 손해배상 책임을 다루는 민사재판의 '증명의 문턱'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선고하려면 검사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엄격한 증명'을 해내야 한다. 즉, 피고인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99% 이상 확실해야 한다는 의미다. 단 1%의 의심이라도 남아있다면 '피고인의 이익' 원칙에 따라 무죄가 선고된다. A·B씨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경찰의 '증거불충분' 결론도 이 원칙에 따른 것이다.
반면, 민사재판은 '증거의 우월성' 원칙이 적용된다. 양측이 제출한 증거를 저울질해 어느 한쪽의 주장이 50.1%라도 더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그쪽의 손을 들어준다. 민사상 불법행위는 형사상 범죄보다 훨씬 넓은 개념으로 형사상 범죄를 구성하지 않아도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행위라면 민사 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재판부는 A·B씨의 폭로가 '범죄'라고 단정할 증거는 부족하지만, 그 행위가 기성용의 사회적 평가를 심각하게 훼손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은 인정한 것이다.
이름 안 밝혔어도…법원 "누군지 알 수 있다면 책임져야"
A·B씨 측은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다는 점을 방어 논리로 내세웠을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름만 빼고 누가 봐도 특정인을 떠올릴 수 있도록 정황을 자세히 묘사했다면, 이는 '암시적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표현의 전 취지에 비추어 특정 사실의 존재를 암시하고 이로써 특정인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으면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다"고 꾸준히 판단해왔다(대법원 2007도5312 판결).
5억 중 1억만 인정한 이유는
기성용 측은 5억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1억만 인정했다. 위자료 산정은 법원의 재량이지만, 통상 가해 행위의 심각성, 피해의 확산 범위, 가해자의 고의성,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기성용 선수가 공인으로서 입은 막대한 이미지 손상과 정신적 고통을 인정해 1억이라는 적지 않은 배상액을 결정하면서도, 동시에 형사적으로 '허위임이 명백히 입증'된 사안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 청구액의 일부만 인용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