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국 개조가 부른 재앙, 국가 책임론에 647개 마비 사태
전화국 개조가 부른 재앙, 국가 책임론에 647개 마비 사태
국가 핵심 인프라 '전화국 개조' 논란
647개 서비스 마비, 국민 피해 구제 위한 '국가 영조물 책임' 쟁점 급부상

고개 숙인 윤호중 장관 / 연합뉴스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화재로 국가 전산망 마비 사태가 나흘째 이어지는 가운데, 주요 민원 현장이 업무를 시작한 29일부터 '민원 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는 국민신문고, 온나라시스템 등 화재로 직접 피해를 본 96개 핵심 시스템의 완전 복구에 최소 2주가 소요될 것이라고 공식화했다. 28일 오후 10시 기준 복구율은 전체 647개 중 4.6%(30개)에 그친다.
국민 이용 빈도가 높은 정부24, 무인민원발급기, 국민신문고 등이 여전히 먹통인 상황에서, 시민 불편과 경제적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는 단순 사고를 넘어 국가의 구조적인 안전 관리 부실이 초래한 '예고된 재앙'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피해를 본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35년 전 경고 무시했나? '전화국 개조'가 부른 국가 영조물 관리의 '구조적 하자'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화재가 발생한 국정자원 대전 본원이 처음부터 데이터센터로 설계되지 않은 오래된 전화국 건물을 개조해 운영한 사실이 지목된다.
데이터센터의 핵심 안전 원칙은 화재 위험이 가장 높은 무정전 전원장치(UPS)의 리튬 배터리실과 서버가 있는 전산실을 물리적으로 분리하고 방화벽 등으로 구획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조 건물은 이러한 기본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화재 위험성이 높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서버실과 같은 층에 배치하는 구조적 오류를 범했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온다. 이미 1991년 보고서 등을 통해 백업 이중화와 UPS 분리 등 안전 대책이 권고되었음에도,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이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구조적 설계 및 관리의 문제'는 법적으로 국가배상법의 핵심 쟁점인 '영조물 관리의 하자'를 구성할 수 있다.
전산망 마비 손해, 국가배상 책임 성립 쟁점은?
이번 사태에서 피해를 본 국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적용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국가배상법 제5조 제1항이다.
1. '공공의 영조물' 관리 책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설치·운영되는 국가 정보통신 기반시설이자, 국민 전체의 이용에 제공되는 '공공의 영조물'에 해당한다.
국가배상법 제5조는 영조물의 설치나 관리에 하자가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하였을 때 국가가 배상책임을 진다고 규정한다.
만약 법원이 ▲노후화된 건물에 대한 부적절한 개조, ▲화재 위험 요소에 대한 물리적 분리 미흡, ▲재난복구(DR) 시스템 이중화 미비 등을 '관리상의 하자'로 인정할 경우, 국가는 국민에게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여기서 '하자'는 영조물이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정성을 결한 상태를 의미하며, 화재 발생 자체가 하자의 존재를 추정하게 한다.
2. 전자정부법상 '장애 관리 의무'
또한, 전자정부법 제56조의2는 행정기관이 정보시스템 장애를 예방하고 발생 시 신속하게 대응·복구하기 위한 '정보시스템 장애관리계획'을 수립·시행할 의무를 규정한다.
만약 국정자원이 이러한 법정 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입증되거나, 시스템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예견 가능했던 대형 장애에 대한 대비책(이중화 등)이 미흡했다고 판단되면, 이는 공무원의 직무상 과실(국가배상법 제2조)로도 연결되어 배상 책임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피해 국민, '직접 손해' 입증하면 배상 청구 가능
이번 전산망 마비로 인해 민원 처리 지연으로 인한 추가 비용, 업무 중단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기회비용 등 구체적인 재산상 손해를 입은 개인이나 기업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피해자가 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손해의 발생, 국가의 관리상 하자(혹은 공무원의 과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만큼, 시간과 비용의 효율성을 위해 법무법인 등을 통한 집단소송이나 집단분쟁조정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민원 대란 속 행정기관의 법적 조치는?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선 행정기관은 전산망 마비 상황에서도 국민 불편을 최소화할 의무를 진다.
대체 민원처리 방안 마련: 정부24, 국민신문고 등 전자 시스템이 중단된 경우, 긴급히 수기 처리 체계를 구축하고 유선 또는 이메일 등을 통한 임시 민원 접수를 진행해야 한다.
처리 기간 연장 및 통지 의무: 전산망 마비는 법정 처리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하지만, 행정기관은 처리 기간 연장 사유와 처리 완료 예정일을 지체 없이 민원인에게 문서로 통지해야 한다(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1조).
이번 국가 전산망 마비 사태는 'IT 강국'의 핵심 인프라가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국민의 일상과 직결된 행정 서비스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피해를 본 국민에 대한 신속하고 정당한 배상책임을 이행하는 것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