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직원이지, 우리직원 아니다" 현대자동차의 태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바뀌어야 한다
"하청직원이지, 우리직원 아니다" 현대자동차의 태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바뀌어야 한다
전태일 50주기에 공개된 사진 한 장⋯ 까만 먼지로 뒤덮인 노동자의 얼굴
"방진 마스크 지급 의무 없다"고 했던 현대자동차⋯사실인지 알아봤더니
변호사들 "현대자동차가 마스크 제공할 의무 있다⋯대법원 판례도 있어"

새까만 분진을 뒤집어쓴 하청 노동자의 사진 한 장이 공개됐습니다. 제대로 된 마스크를 지급받지 못해 생긴 일이라는데, "우린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현대자동차의 해명이 역풍을 맞았습니다. /'전태일재단' 홈페이지⋅연합뉴스⋅편집=조소혜 디자이너
50년 전 오늘. 한 청년이 죽었다. 휘발유를 뒤집어쓴 몸이 근로기준법 법전과 함께 불탔다. 그는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스물두살에 산화한 고(故)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이다.
그의 50주기인 2020년 11월 13일. 한 청년이 얼굴에 새카만 먼지를 뒤집어썼다. 대기업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그는 까만 먼지가 흩날리는 공장에서 쌓여있는 분진을 손으로 직접 퍼낸다. 마스크를 써봤자 분진 범벅이 된다고 말했다. 성능 부실한 마스크 때문에 먼지를 더 먹는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이 사진을 공개하며 "전태일 열사 50주기에도 현실은 아직도 1970년"이라는 논평을 냈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지난 12일 SBS에 "외주 용역비를 외주업체에 주고 있기 때문에 방진 마스크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가 더 큰 분노를 맞았다.
결국 "기존에 지급하던 3M 방진 마스크를 다시 제공하고 있다"고 13일 입장을 다시 밝혔다.
현대자동차가 입장을 바꾼 건, 단순히 여론의 거센 반발 때문이었을까. 변호사들은 "법적으로 현대자동차의 처음 해명은 사실과 다르다"며 "외주업체뿐 아니라 원청 역시 당연히 방진 마스크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 근거는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있다고 했다. 이 법은 분진 등 유해 작업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지난 1981년에 만들어졌다. 실제 이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법적 의무'로서 촘촘하게 밝히고 있다.
특히 방진 마스크 등은 산업안전보건규칙 제617조(호흡용 보호구의 지급 등)에 콕 집어 규정돼 있다. "근로자가 분진작업을 하는 경우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적절한 호흡용 보호구를 지급해 착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작업 장소에 밀폐 설비 등 별도의 특수 시설을 설치하지 않는 한, 그렇게 해야 한다.
분진 업무와 관련된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고, 또 그 결과 필요한 추가 조치를 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고(산업안전보건법 제36조), 분진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산언압전보건법 제39조)는 규정 역시 존재한다.
그런데 현대자동차에 이 모든 책임을 물으려면, 아주 중요한 '관문'을 하나 넘어야 한다. 현대자동차가 이 법에서 말하는 '사업주'에 해당해야 한다. 모든 조항이 '사업주'에 부과하는 의무이기 때문에 현대자동차가 사업주가 아니라면, 이 모든 조항은 유명무실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된 근로자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일하지만, 현대자동차 소속이 아니다. 그를 고용한 사업주는, 하청 업체 '마스터 시스템'이다. 형식적으로 현대자동차는 이 근로자의 '사업주'가 아닌 셈이다. 그저 외주를 준 원청업체일 뿐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검토한 변호사들은 "하청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현대자동차 역시 사업주에 해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원청이란 이름 뒤에 숨는 게 가능했을지 몰라도, 최근 "대법원 판례의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소속 조영신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현대자동차도 근로자 보호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이 법에서 말하는 '사업주'에 포함되고, 실제 대법원 판례도 사업주의 범위를 늘려나가는 추세"라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서류상으로는 사업주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현대자동차의 지휘⋅지시 감독 아래에서 일하는 근로자들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지 비용 절감을 위해 외주화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이 같은 법원의 태도는) 너무나도 당연한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변협 노무변호사회 공보이사인 법무법인 서울의 이장우 변호사도 같은 의견이었다.
"현대자동차도 당연히 이러한 안전 배려의무를 부담한다"며 "따라서 현대자동차는 최초 해명과 달리 방진 마스크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 2013년 대법원 판례(2011다60247)가 "근거가 된다"고 이 변호사는 밝혔다.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다 다친 근로자가 하청업체와 원청업체 모두에게 책임을 물은 사건이었다. 1심은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하청업체의 책임만 인정했지만, 2심⋅대법원은 원청업체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대법원은 "사용사업주(원청)의 보호의무 위반 등으로 손해를 입은 파견 근로자는, 직접 고용 또는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경우에도 묵시적 약정에 근거해 보호 의무 또는 안전 배려의무 위반을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직접 고용계약을 맺지 않은 원청업체에 업무상 재해 책임을 물은, 첫 대법원 판결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