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빗장 풀린 대형마트 새벽배송… '정책 일관성'과 '노동권' 법적 쟁점 부상
13년 만에 빗장 풀린 대형마트 새벽배송… '정책 일관성'과 '노동권' 법적 쟁점 부상
쿠팡 견제 위한 유통법 개정 추진
3개월 전 '발암물질' 경고한 정부의 자기모순 지적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전통시장을 살리고 마트 노동자의 쉴 권리를 지키기 위해 지난 13년간 굳게 닫혀있던 대형마트의 심야 영업 빗장이 풀릴 전망이다.
정부와 여당이 쿠팡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이마트, 홈플러스 같은 대형마트도 새벽배송을 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석 달 전 새벽노동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정부가 갑자기 입장을 바꾸면서 법적 정당성과 노동자 안전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13년 묶인 마트의 '발'… 쿠팡이 시장 삼키자 뒤늦게 해제
지난 2013년 도입된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가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문을 닫도록 강제했다. 마트 기사들이 밤에 쉴 수 있게 하고, 대형마트 대신 전통시장을 이용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법은 오프라인 매장에만 적용됐고, 온라인 쇼핑몰인 쿠팡은 규제 없이 24시간 배송을 하며 급성장했다. 2024년 쿠팡의 매출은 41조 3,000억 원을 기록하며 국내 전체 대형마트 매출(37조 1,000억 원)을 앞질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는 지난 4일 실무 협의회를 열고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을 풀어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법 개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전국 1,800여 곳의 마트 매장을 배송 거점으로 활용해 쿠팡과 대등하게 경쟁하게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 소식에 신세계 계열 물량을 맡는 CJ대한통운 등 물류업계는 환호하고 있지만, 법조계와 노동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새벽노동은 해롭다"던 장관의 경고, 3개월 만에 잊혔나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내세웠던 '명분'의 실종이다. 2025년 11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새벽배송 노동자의 우울증 비율이 일반 노동자보다 3배나 높다는 실태조사를 발표하며 "새벽배송은 2급 발암물질만큼 해롭다"고 강조했다. 당시 정부는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심야노동을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런데 불과 3개월 만에 "쿠팡을 견제해야 한다"는 이유로 대형마트 노동자들에게도 새벽노동을 허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법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행정이 이전에 한 약속이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신뢰보호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똑같은 밤샘 노동인데 쿠팡은 위험하고 대형마트는 괜찮다는 식의 이중 잣대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헌재가 인정한 '상생과 건강' 가치… 법적 기반 흔들리나
이번 조치는 기존의 판례와도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판결(2016헌바77, 78, 79 병합 결정)을 통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이라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결정문에는 마트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도 중요한 이유로 담겨 있었다.
또한 대법원은 2015년 전원합의체 판결(2015두295)에서 국가가 경제 주체들 사이의 조화를 위해 기업의 활동을 규제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개정안은 법이 정한 원래 목적인 '노동자 건강'과 '상생' 대신 '특정 기업 견제'라는 경쟁 논리만 앞세우고 있다. 이는 법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배송 기사는 '법적 사각지대'… 대책 없는 졸속 추진 우려
실질적인 노동자 보호 대책이 빠져 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근로기준법 제56조에 따르면 밤에 일하면 돈을 더 줘야 하지만, 대부분의 배송 기사는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직'이라 이런 법적 보호를 받기 힘들다. 서울행정법원(2012구합43352) 등 과거 판결들은 영업 제한의 핵심 근거로 노동자의 '휴식권'을 들었지만, 이번 정책에는 그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영업시간 제한은 풀면서 월 2회 의무 휴업은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절충안은 정책의 일관성만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쿠팡을 잡기 위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삼는 것은 행정절차법상 의견 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은 졸속 행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13년간 유지된 유통 질서를 뒤바꾸기에 앞서, 배송 노동자들을 위한 안전장치와 중소상인 지원책이 먼저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