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재난방송 주관 자격있나⋯7명의 목숨도 외면했는데
KBS, 재난방송 주관 자격있나⋯7명의 목숨도 외면했는데
독도경비대 측 "촬영 안했다더니 단독보도"
재난보도준칙 어긴 KBS "깊이 사과"
"단독에 눈이 먼 비협조" 비난 봇물

[처참한 잔해] 독도 인근 해상에서 추락한 소방헬기가 3일 오후 해군 청해진함에 의해 인양되고 있다. /연합뉴스
독도 헬기 추락사고 영상을 찍고도 수색팀에 제공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KBS가 3일 결국 사과했다.
이 논란은 KBS가 지난 2일 저녁 9시뉴스를 통해 '사고 직전 영상'이라는 제목의 단독 기사를 내보내면서 시작됐다. KBS 보도 직후 수색팀 관계자가 "KBS가 헬기 진행 방향 영상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KBS는 "단독에 눈이 멀어 희생자 수색을 등한시했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은 끝에 이날 오후 늦게 사과했다.
국가재난방송 주관사로서 '재난 정보를 신속히 제공할 의무'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향후 법적 책임을 질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사고가 벌어진 지난달 31일 KBS 본사 엔지니어 A씨는 독도에 체류하고 있었다. KBS가 독도에 설치한 파노라마 카메라를 정비하기 위해서였다. 이 직원은 독도에 119구급 헬기가 다가오자, 착륙장 인근에서 헬기가 착륙하고 다시 이륙하는 장면을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촬영했다.
응급환자와 보호자, 소방대원 5명 등 7명이 탄 헬기는 독도에서 이륙한 지 2~3분 만에 바다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 헬기가 날아갔는지 확인하는 건 초기 수색에 성패를 결정지을 중요한 정보였다. 독도경비대가 사고 직후 KBS 직원에게 "영상을 제공해달라"고 한 이유다.
하지만 독도경비대 측에 따르면 KBS 직원은 이 영상을 제공하지 않았다.

KBS는 이 영상을 활용해 지난 2일 '9시 뉴스' 기사를 만들었다. 그날 첫 번째 '톱 기사'로 앞세운 단독 기사였다. 이 기사에는 "헬기가 남쪽으로 방향을 돌린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사가 공개되자 포털사이트 댓글에 "독도경비대 박ㅇㅇ 팀장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왔다. 박 팀장은 "KBS는 사고 이후 수십명의 독도경비대원이 그 고생을 하는데 헬기 진행 방향 영상을 제공하지 않고 촬영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더라"라고 썼다.

박 팀장은 이어 "헛고생을 했던 시간이 너무나 가슴 아프고 치가 떨린다"며 "수십 명이 이틀을 잠 못 자는 동안 다음 날 편히 주무시고 나가시는 것이 단독 보도 때문이냐"고 덧붙였다. 현재 이 댓글은 삭제된 상태다.
양승동 KBS 사장은 지난 6월 발간한 사보에서 "재난방송은 국민 신뢰와 직결된 국가기간방송 KBS의 핵심 책무"라고 밝혔다. 지난 4월 강원도 고성 산불 당시 특보 체제로 전환하지 않고 기존 정규 프로그램을 그대로 내보낸 점을 반성하면서 "KBS가 갖고 있는 재난주관방송사라는 지위에 충실하겠다"고 선언한 발언이었다.
'방송통신발전법'은 KBS를 재난주관방송사로 지정하면서 '재난 정보'에 대한 특별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했다. 재난 업무를 담당하는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들은 KBS가 정보를 요청하면 그에 관한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일종의 특혜다.
동시에 그에 따른 의무도 명확히 했다. KBS는 재난 정보를 국민을 포함해 여러 기관에 신속하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한 것이다. "재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공할 것."(법률 40조)
독도 헬기 추락 영상을 신속하게 제공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KBS는 '정보의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공할 의무'를 어긴 것이 된다. 하지만 이에 따른 처벌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의무를 어겼다고 처벌하는 조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통신발전법은 국가가 "재난방송을 하라"고 요구할 때, KBS가 그에 응하지 않을 경우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재난 방송을 할 준비를 평소에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도록 하고 있다. 이번 경우처럼 일부 정보를 감추고 재난 방송에 이용하는 경우를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KBS는 언론이 자체적으로 정한 재난보도준칙을 어겼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재난보도준칙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들이 정한 자치 규약이다.
이 준칙은 다음과 같은 서문을 두고 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확하고 신속하게 재난 정보를 제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도 언론의 기본 사명 중 하나이다. 언론의 재난보도에는 방재와 복구 기능도 있음을 유념해 피해의 확산을 방지하고 피해자와 피해지역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능해야 한다."
특히 준칙 4조(인명구조와 수습 우선)에는 "구조와 수색이 취재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재난현장 취재는 긴급한 인명구조와 보호, 사후수습 등의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KBS의 '사고 영상 미제공' 의혹은 이를 정면으로 위반한다. 이 점에서 변호사들은 희생자 가족에게 KBS가 위자료를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KBS가 사고 영상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구조와 수색에 지장을 줬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효현 박수진 변호사는 "위자료 청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기자들이 보도 준칙을 어긴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KBS는 이날 "단독 보도를 위해 영상을 숨겼다는 비난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면서도 "해당 직원이 사전 동의 없이 휴대전화 촬영행위를 한 점, 사고 초기에 촬영하지 않았다고 답변한 점, 어제 보도과정에서 이를 보다 철저히 확인하지 않고 방송해 논란이 일게 된 점 등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어 "해당 직원과 책임자 등 관계자를 상대로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보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추후 설명 드리겠다"며 "향후 유사한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직원 윤리강령 등을 철저히 점검, 시행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