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브레이크 선' 잘랐는데, 살인미수 아닌 특수재물손괴?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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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브레이크 선' 잘랐는데, 살인미수 아닌 특수재물손괴?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

2022. 09. 13 17:11 작성2022. 09. 13 18: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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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ah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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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미수 아닌 특수재물손괴로 형사 재판 앞두고 있어

비슷한 사건에서 '살인미수 무죄' 나온 판례 참고한 듯

누군가 내 차량의 브레이크 선을 잘랐다면? 차량의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당연히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 가해자에게 적용된 혐의는 '살인 미수'가 아닌 '특수재물손괴'였다. /셔터스톡·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지난 4월, 모임 후 차를 타고 귀가하려던 A씨를 주차장 관리자가 말렸다. 관리자는 "차를 타면 위험할 것 같다"며 "CC(폐쇄회로)TV에 누군가 A씨 차량 밑에서 약 5분간 머물다 나오는 장면이 찍혔다"고 말했다.


관리자의 조언대로 차를 몰지 않은 A씨. 다음날, 차량을 확인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브레이크 오일 선이 절단돼 파손돼 있었다. 자칫 차를 몰았다간 대형 사고를 당할 뻔했던 것. 경찰 조사 결과, 브레이크를 절단한 사람의 정체 또한 충격적이었다. 가해자는 A씨 아내와 수 년 간 내연 관계에 있던 남성이었다.


가해자에게 적용된 혐의는 '살인 미수'가 아닌 '특수재물손괴'

현재 가해자는 형사 재판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피해자 A씨가 억울해하는 게 한 가지 있다. 가해자에게 적용된 혐의가 '살인 미수'가 아닌 '특수재물손괴'인 것. 경찰은 가해자의 통화 내역, 문자 발송, 보험 가입, 동선, 평소 행실 등을 살폈으나 살인 미수 혐의를 적용할 단서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의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당연히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어째서 이를 훼손했는데도 살인 미수 혐의를 적용하지 못한 걸까. 과거 비슷한 사건에서 살인미수 혐의가 무죄로 나온 판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해당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급경사 도로를 지나야 한다는 것을 이용했지만, 브레이크 작동에 문제를 일으켰지만 살인미수가 인정되지 않았다.


급경사 있는 것 알고도, 브레이크 오일 3차례 유출시켰는데⋯살인미수 '무죄'

사건은 지난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성 B씨는 재결합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전 여자친구 차량의 브레이크 오일 호스를 건드렸다. 이로 인해 브레이크 오일이 유출됐는데, 이렇게 되면 차량의 제동력이 떨어지고 제동거리가 길어지게 된다. 다행히 피해자가 브레이크 이상을 알아챈 피해자의 대응으로 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B씨는 이런 범행을 계속 이어갔다. 피해자가 차를 고치면, B씨는 또 피해자의 차 브레이크에 손을 댔다. 무려 3차례나.


전 여자친구 차량의 브레이크를 건드려 오일을 유출한 남성. 법원은 그의 행동에 살인의 동기나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전 여자친구 차량의 브레이크를 건드려 오일을 유출한 남성. 법원은 그의 행동에 살인의 동기나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이에 대해 1심을 맡았던 울산지법은 지난 2017년 "사고를 낼 목적으로 제동 장치를 조작한 것이 의심되긴 하지만, 그로 인해 브레이크 기능이 완전히 상실될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며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면서 재물손괴 혐의만 인정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 측은 '살인미수'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아 항소했지만, 2심의 판단도 같았다. 살인미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부산고법 재판부는 "브레이크 오일을 유출시킬 당시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했다. 다만, 살인미수가 이번에도 인정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검찰이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한 '상해미수' 혐의를 인정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변호사들 "살인의 고의까지 입증하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여"

살인미수죄가 인정되려면, 살인의 '고의'가 인정돼야 한다. 의심 정도로는 부족하다. 더프렌즈 법률사무소의 이동찬 변호사는 "'죽이겠다'는 확정적 고의까진 아니더라도, '이렇게 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경우 "브레이크 오일선 절단 외에는 살인의 고의를 인정할만한 확실한 흔적을 찾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법률 자문
'더프렌즈 법률사무소'의 이동찬 변호사, '법무법인 최선'의 이준상 변호사, '법률사무소 나란'의 서지원 변호사. /로톡DB


법무법인 최선의 이준상 변호사 역시 "살인미수가 적용되려면, 가해자의 인터넷 검색 기록에 '살인', '교통사고사망' 등이 남아있거나, 살인 방법을 계획한 추가적인 사정이 필요하다"며 "(해당 판례 등을 고려해) 브레이크 오일 호스를 파손했다는 것만으로 살인의 고의까지 입증하는 게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법률사무소 나란의 서지원 변호사의 의견도 비슷했다. "브레이크 오일이 유출됐다고 해서, 바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위 판례의 울산지법 재판부 역시 '교통사고의 발생을 예상했다는 사정만으로 그것이 곧바로 살인 범행 자체의 실행의 착수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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