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그러나 태아 생명권 부정한 건 아냐
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그러나 태아 생명권 부정한 건 아냐

유남석 헌재소장 등 헌법재판관이 11일 오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하고 있다. 홍해인 기자 /저작권자 (C)연합뉴스
1953년에 제정된 낙태죄가 2020년까지만 수명을 유지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11일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2017헌바127)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란 헌법재판소가 법률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입법자의 입법형성 자유를 존중하고 법의 공백과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그 법률이 계속 효력을 가지도록 하는 결정 형식입니다. ‘법률에 대한 시한부 결정’과 마찬가지이기에, 사실상 낙태죄 조항은 사망 선고를 받은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날 결정에서는 총 9인의 재판관 중 4인이 헌법불합치, 3인이 단순위헌, 2인이 합헌 의견을 냈습니다. 위헌소원에서는 6인 이상이 단순위헌 의견을 내야 주문을 변경할 수 있는데, 그 숫자가 6인에 미치지 못한 이번 결정에서는 헌법불합치 의견을 따라 잠정적용이 선고된 것입니다.
낙태죄가 제정된 이후 지난 66년 동안 찬반 논란은 게속돼 왔는데요. 여기서 대립하는 기본권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입니다.
낙태죄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태아가 산모와 별개의 생명체가 아니라 모체에 의존하므로 생명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낙태죄는) 임신·출산을 할 것인지 여부와 그 시기 등을 결정할 권리(자기운명결정권)를 가진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반면, 낙태죄 존속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은 매우 중요한 공익이고 낙태의 급격한 증가를 막기 위해서라도 형사처벌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으로 맞섰습니다. 이는 지난해 5월 24일 열린 낙태죄 공개변론에서 밝힌 법무부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헌법불합치’ 결정을 통해 낙태죄 조항에 사망 선고를 내린 헌법재판소가 태아의 생명권을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먼저 헌법재판소는 ‘입법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 판단에서 “태아는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모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전제했습니다.
다만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 판단 단계에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하여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법익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한 위헌적 규정이라고 본 것입니다.
오늘 결정에서 심판의 대상이 된 조항은 임부의 자기낙태죄 조항뿐만 아니라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은 의사의 낙태죄 조항도 함께 포함됐는데, 의사낙태죄 조항 또한 동일한 판단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2020년까지 입법자의 개정이 없을 경우 2021년부터 효력을 잃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