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연출하는 기부광고⋯'법적 문제'는 없어도, '진짜 문제'를 생각해볼 때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가난을 연출하는 기부광고⋯'법적 문제'는 없어도, '진짜 문제'를 생각해볼 때

2019. 12. 24 19:22 작성
박선우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w.park@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가난을 자극적으로 '연출'하는 후원 모금 광고

변호사들 "법적으로 처벌하긴 어렵다"

기부 의미 퇴색⋯'진짜 기부'의 의미를 돌아볼 때

캄보디아에 사는 한 여자 아이가 단백질 섭취를 위해 쥐를 먹고 있다. 한 비영리단체는 이 사진을 활용해 해당 지역의 낙후성을 강조했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커피 한 잔 가격으로, 고통스런 아이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멘트와 함께 화면 속으로 낡고 무너져 겨우 형체만 남은 집이 보인다. 허름한 세간살이 사이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피골이 상접한 아이가 누워 있다. 클로즈업된 아이의 얼굴 옆으로 후원 방법이 나온다.


연말이 되면서 따뜻한 나눔의 손길을 갈구하는 광고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후원 광고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웃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의 공감과 후원에 동참하자는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최근 빈곤을 자극적으로 표현하는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로 인해 기부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광고는 시청자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더 불쌍하고, 더 비참하게' 가난을 연출한다. 이는 시청자에게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더 가난하게, 더 비참하게 '빈곤 포르노', 문제 없을까

사람들의 선의로 이뤄지는 후원 모금 광고. 만약 허위 과장 광고라면 법적으로 잘잘못을 따져볼 수 있을까. ①광고를 만든 후원단체와 ②광고를 보고 돈을 낸 기부자, ③광고에 등장한 빈곤층 모델 등 3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분석해봤다.


①광고를 만든 후원단체

후원 모금 광고도 '광고'다. 만약 광고에 허위 내용이 담겼다면 표시광고법에 의해 처벌된다.


우리 표시광고법(제3조⋅부당한 광고 행위의 금지)은 거짓된 과장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방송 광고라면 광고 연출에 대해서도 '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의 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를 후원 모금 광고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후원 광고가 '공익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광고이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한남의 김정민 변호사는 "후원 광고를 실제 모습보다 더 빈곤하거나 불쌍하게 보일 수 있도록 연출하는 경우 윤리적 문제는 있다"면서도 "어느 정도는 사실에 기반한 것이고 후원 모금 광고의 최소한의 목적은 공익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기죄나 기타 형사 벌칙까지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②광고를 보고 돈을 낸 기부자

광고에 대한 처벌이 어렵다면, 허위 광고를 보고 기부한 기부자도 법적 보상도 어려울까. 변호사들은 광고가 사기죄의 요건인 '기망'(欺罔⋅남을 속여 넘김)에 해당해야 후원금 환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기죄는 사람을 속여 착오에 빠뜨려야 성립된다. 하지만 후원금 모금 광고는 애초 공익적인 의도로 제작되기 때문에 이 범위 안에서 촬영이 이뤄진다면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


법률사무소 나란의 서지원 변호사는 "과장된 광고를 촬영했다고 해서 사기죄가 성립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다"면서도 "광고 내용의 허위 정도와 과장 정도를 모두 종합적으로 고려해 봤을 때 기망의 수준에 해당한다고 판단될 정도라면 충분히 사기죄로 처벌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법률 자문
(왼쪽부터) '법무법인 한남'의 김정민 변호사, '법률사무소 나란' 서지원 변호사. /로톡 DB
(왼쪽부터) '법무법인 한남'의 김정민 변호사, '법률사무소 나란' 서지원 변호사. /로톡 DB


사기죄로 처벌이 어렵다면, 후원 금액 환불은 가능할까?


김정민 변호사는 "거짓광고에 출연한 허구의 인물을 거짓 대상자를 구체적으로 지정해 기부 내지 후원한 경우라면 기부의 중요한 사실에 대한 착오⋅사기 등을 이유로 환불을 요구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출기법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거짓의 수준이 경미한 경우라면 광고가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환불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조손가정의 A가 광고에 등장했고 실제로 A를 후원 대상자로 지정해 후원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A는 조손가정의 자녀가 아니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전혀 없다면 기부금 환불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낸 게 아니라면 환불이 불가능할 수 있다.


③광고에 출연한 인물

법적 문제가 확실히 되는 경우도 있다. 빈곤층으로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서다. 만일 후원단체가 실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절박한 처지를 이용해 광고 출연을 강요했다면 형법상 강요죄에 해당한다.


서지원 변호사는 "광고 촬영 당시 후원단체가 원하지 않는 행위를 강요했다거나, 동의하지 않는 내용을 촬영했다면 충분히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광고 촬영 당시 후원 대상에게 앞으로 촬영할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동의를 받은 상태에서 광고를 촬영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김정민 변호사는 "실제 후원 대상자가 광고에 등장하는 경우, 후원 대상자를 알아볼 수 있는 얼굴, 목소리, 신체의 특징, 주변환경 등과 함께 노출된다면 초상권, 개인정보 침해, 인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시적 후원'보다 '지속적인 관심'⋯진짜 목적을 생각해 볼 때

광고 촬영과 홍보 과정에서 후원 대상자의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개발 원조 사업을 하는 비영리기구 협의체인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은 유엔아동권리협약 등을 바탕으로 한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이 단체에는 월드비전, 세이브더칠드런,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등 국내 주요 후원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촬영 전 아동의 의사 구하기 △아동을 능동적인 주체로 묘사 △아동의 신변 보호 등이 있다. 또한 아동이 처한 환경의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보여줘 기부자로 하여금 아동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게 돕도록 한다. 일시적인 후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