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건인데 왜 못 보나" 피의자신문조서 열람 제한에 답답한 피해자들을 위한 해결책
"내 사건인데 왜 못 보나" 피의자신문조서 열람 제한에 답답한 피해자들을 위한 해결책
수사 단계의 '깜깜이' 벽
공판 단계 기록 열람·등사와 선제적 증거 제출로 뚫어야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범죄 피해를 입고 고소를 진행 중인 A씨는 답답함에 밤잠을 설친다. 가해자가 경찰 조사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혹시 거짓말로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지만 수사기관은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하기 때문이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피의자신문조서 열람이 불가능한 현실, 이 법적 장벽을 넘을 방법은 없는 걸까.
피해자는 ‘관전자’인가? 수사 단계의 높은 열람 문턱
현행법상 피해자가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신문조서 열람을 직접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수사기관이 작성하는 피의자신문조서는 수사의 밀행성을 보장하고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사준칙(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제69조'에 따라 피해자가 수사서류 열람·복사를 신청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수사 기밀 누설 우려나 관계인의 명예 훼손, 수사 지장 등의 사유가 있다면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라 거부될 수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어떤 ‘패’를 내놓았는지 알지 못한 채 불안한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 셈이다.
법정으로 넘어가면 달라지는 형세, ‘재판장 허가’가 핵심
답답한 상황은 공판 단계에 접어들며 반전의 기회를 맞는다. 사건이 검찰을 거쳐 법원으로 넘어가면 형사소송법 제294조의4(소송기록의 열람·등사)에 따라 피해자의 권리가 구체화된다.
피해자나 법정대리인, 배우자, 변호사 등은 소송계속 중인 사건의 기록을 열람하거나 복사(등사)해달라고 재판장에게 신청할 수 있다. 재판장은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이를 허가한다. 다만, 사용 목적을 제한하거나 관계인의 명예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을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재판장의 결정에는 불복할 수 없다.
실제 헌법재판소(2004. 9. 23. 선고 2000헌마453 결정)는 검사가 피의자신문조서의 일부를 삭제하고 제출하더라도, 피고인이 증거결정에 관한 의견진술 등을 통해 그 증거능력을 다툴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역설적으로 피해자 역시 적절한 법적 절차를 통해 기록에 접근하고 대응할 기회가 보장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패 숨기면 독 된다” 고소장부터 승부 걸어야 하는 이유
일부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반응을 보기 위해 고소장에 증거를 일부만 담는 '전략적 은폐'를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를 치명적인 실수라고 경고한다. 정수경 변호사는 저서 『슬기로운 피해자생활』을 통해 "나중에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으면 '왜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느냐'는 의심을 사 진술의 신빙성만 깎아먹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례(1991. 10. 22. 선고 91도1672 등) 역시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과 구체성을 신빙성 판단의 핵심 잣대로 삼는다. 수사기관이 사건의 중대성을 인지하게 하려면 고소장 단계부터 카카오톡 대화, 녹음파일, 진단서 등 확보된 모든 증거를 쏟아부어야 한다. 특히 스마트폰 데이터의 경우 '대화방 나가기' 등을 하면 포렌식조차 무용지물이 될 수 있어 원본 보존이 필수적이다.
정보의 비대칭, 국선변호사와 통지 제도로 메워야
당장 가해자의 조서를 볼 수 없더라도 수사 진행 상황을 파악할 길은 열려 있다. 고소인은 수사준칙에 따라 수사 진행 상황을 통지받을 권리가 있으며, 성폭력이나 아동 대상 범죄 피해자의 경우 국선변호사를 통해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결국 형사절차는 '누가 더 진실에 가까운 기록을 먼저 선점하느냐'의 싸움이다. 수사 단계의 밀행성 벽에 가로막혀 좌절하기보다, 고소장부터 일관된 진술과 증거로 수사 방향을 주도하고, 공판 단계의 열람권을 활용해 가해자의 궤변을 무너뜨리는 치밀한 전략이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