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심 결국 구속⋯법원이 보는 '건강상 문제' 기준은 뭘까?
정경심 결국 구속⋯법원이 보는 '건강상 문제' 기준은 뭘까?
법원, 24일 새벽 정경심 교수 구속 결정⋯ '건강상 문제' 안 통했다
검찰과 법원이 '정 교수 구속' 결정한 기준은?

[한쪽 눈 가린 채⋯] 구속심사가 끝난 뒤 정 교수는 한쪽 눈에 안대를 착용하고 법정 밖으로 나왔다. 이 모습에 ‘정 교수 건강 상태’가 생각보다 나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지만, 법원은 구속을 결정했다.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57) 동양대 교수가 24일 새벽 구속됐다. 조 전 장관 가족 중에는 5촌 조카에 이은 두 번째 구속이다.
정 교수 변호인단은 전날 오전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그러면서 “피의자 건강 상태가 구속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CT와 MRI 등 뇌종양⋅뇌경색 의료 기록을 함께 제출했다.
7시간에 걸친 구속심사가 끝난 뒤 정 교수는 한쪽 눈에 안대를 착용하고 법정 밖으로 나왔다. 이 모습이 사진에 찍히면서 ‘정 교수 건강 상태’가 생각보다 나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정경심 교수가 지난 23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 건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정 교수는 구치소에서 대기했다. /연합뉴스
이날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형 집행이 정지된다는 소식이 나온 날이다. 신 회장은 “구속 수감 때문에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공교롭게도 정 교수 측도 같은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정 교수의 구속영장 심사를 맡은 송경호 부장판사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송 판사는 “정 교수의 범죄 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이 됐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조 전 장관 지지자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공정하지 않은 법 집행"이라며 “법원의 구속 결정을 재검증해봐야 한다"고 외쳤다.
이날 법조계도 정 교수를 구속한 법원 결정을 두고 시끌시끌했다. 구속이 적절 하느냐를 두고 찬반양론이 대립했지만, 양쪽 모두 “얼마나 건강이 나빠야 구속이 불가능한 건지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는 같은 의견을 보였다.
검찰과 법원은 어떤 기준에 따라 ‘정 교수 건강 상태'를 고려했을까.
먼저 검찰 단계다. 검찰은 ‘구속 수사 기준에 관한 지침 12조’에서 “구속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피의자의 건강 등 특별한 사정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특별한 사정’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검찰의 재량권이 폭넓게 인정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검찰은 의사 출신 검사와 외부 전문가를 투입해 정 교수 측이 제출한 의료기록을 검토했다. 그 결과 “정 교수는 수감생활을 견딜 정도의 상태”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 교수 측 변호인이 “구속을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그 주장을 배척하고 법원에 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지난 23일 정경심 교수 측 변호인단이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게 청구된 영장은 법원 단계에서 한 번 더 검토됐다. 법원은 ‘인신구속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에 따라 정 교수의 건강 상태를 점검했다. 피의자 건강 상태와 관련해서 예규에 규정된 부분은 ‘도망의 염려’ 항목에 있다. 치료 중인 질병이 있으면 도망을 갈 염려가 줄어듦으로 영장 발부의 필요성이 낮아진다는 논리다.
영장 심사를 맡은 송경호 부장판사는 제출된 의료기록과 함께 법정에 출석한 정 교수 측에 건강 상태와 관련한 질문을 했다고 알려졌다. 예규에 명시돼있진 않지만, 건강 상태가 얼마나 위독한지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고 한다. 결국 송 부장판사의 결정은 ‘영장 발부'였다는 점에서 검찰 주장과 같이 “구속수감을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고 판단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법원은 구속심사에서 피의자 건강 상태를 사안별로 검토했다. 그 결과 어떤 때는 건강 상태를 고려해 영장을 기각했고, 어떤 때는 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영장을 발부했다.
먼저 이번 정 교수 때와 달리 건강 악화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건들이다.
① 2011년 신정환 (방송인) 구속 영장 기각
지난 2011년 서울중앙지법 김환수 영장전담 판사는 해외 상습도박 혐의를 받은 방송인 신정환(36⋅당시)씨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김 판사는 “(신씨가) 다리 수술로 재활 치료가 필요하다”며 “수감생활이 어렵다”고 밝혔다.
② 2011년 김진숙 (전 민노총 위원) 구속 영장 기각
같은 해 부산지방법원 남성우 영장전담 판사는 김진숙(51⋅당시) 전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남 판사는 “오랜 기간 크레인 농성으로 악화된 건강을 회복시킬 필요성이 큰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당시 김 전 위원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09일 동안 선박크레인 운전석에서 농성을 벌인 직후였다.
반면 건강악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한 사건도 있었다. 정 교수 때와 같은 판단이다.
③ 2012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구속 영장 발부
지난 2012년 서울중앙지법 박병삼 영장전담 판사는 최시중(75⋅당시)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최 위원장 측은 당시 “건강이 악화돼 서울 대형병원에 심장혈관 수술을 예약해 놓았다”고 주장했지만, 박 판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④ 2013년 이재현 (CJ그룹 회장) 구속 영장 발부
지난 2013년 서울중앙지법 김우수 영장전담 판사는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은 이재현(53⋅당시) CJ그룹 회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당시 이 회장 측은 ‘만성신부전증, 고혈압, 고지혈증, 샤르코-마리-투스’ 등의 병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⑤ 2017년 김경숙 (전 이화여대학장) 구속영장 발부
지난 2017년에는 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선처를 호소했던 김경숙(62⋅당시) 전 이화여대 신산업융합대학장이 구속됐다. 당시 성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아무리 암 투병이라도 구속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2017년 1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한 김경숙 전 이화여대 신산업융합대학장의 모습. 항암치료 탓에 김 전 학장의 머리는 삭발 상태였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의사출신 법무법인 우성의 정필승 변호사는 “얼핏 보면 법원이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사가 봤을 때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정 변호사는 “신정환(①)⋅김진숙(②) 사건의 경우 급성기로 적극적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며 “당장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태이기 때문에 영장이 기각된 것”이라고 했다.
반면 “최시중(③)⋅이재현(④)⋅김경숙(⑤) 사건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정 변호사는 “치료 단계가 아닌 만성적인 상태에서는 구속이 됐다”며 “얼핏 중대한 질환을 겪는 것처럼 보이는 피의자가 구속됐을 때는 전반적으로 이런 경향이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치료가 긴급하게 필요한 급성 환자의 경우에는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정 교수 사건은 당장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며 “뇌종양⋅뇌경색이 동시에 발견된 건 종양이 작은 게 아니라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관련해서 검찰이 “정 교수의 뇌종양은 양성이기 때문에 수감 생활이 가능하다”고 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정 변호사는 “뇌종양은 양성⋅악성을 불문하고 심각한 질환”이라며 “뇌 안에서 종양이 자라면 뇌 자체가 압박을 받아 급사할 가능성도 높고, 발작도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정 변호사는 끝으로 “우리 법원이 수감자 건강 상태를 지나치게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며 “구속영장 심사 단계에서도 의학적 판단이 필요할 때는 전문가 의견을 좀 더 청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 이제한 법률사무소' 이제한 변호사는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할 때 ‘질병 치료 필요성'을 중요한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법원 예규에는 ‘도망을 억제할 만한 치료 중인 질병이 있는지'를 고려하는 것처럼 규정하고 있으나, 그동안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범죄사실에 대한 사정이 더 큰 요소인 것 같다"며 “범죄의 경중이나 수법이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말했다.
